
화요일에 양천구 한 바퀴를 즐겁게 돌고 난 뒤, 목요일은 어디를 갈까 했더니 제법 큰 비 예보가 있더군요.
걷는 여행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비가 내리는 날은 참 애매합니다.
가랑비 정도야 맞으며 걸을 생각이 있지만, 그것도 한두 시간이지 오전 내내 내리면 역시 좀 힘들거든요.
이럴 때에는 가고 싶었던 카페나 밥집을 가는 게 어떨까 싶어 지도를 켜서 보던 중,
전등사의 죽림다원과 석모도의 노지식당이 눈에 걸렸습니다.
평일 오전에 비까지 오고, 어쩌면 관광명소 가기엔 제일 좋은 타이밍이겠다 싶어 냉큼 출발했네요.


남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가려 보니 차에 우산이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세차하고 정리한다고 다 집에다 올려버린 모양이네요. 뭐... 별 수 있나요. 좀 맞으며 올라가야죠.
최근 절과 산의 입장료는 무료화됐지만, 주차비는 아직 받습니다.
남문 주차장의 경우 종일로 3,000원을 받네요. 시간별로 징수하는 시스템은 없어서 무조건 종일로 요금이 책정됩니다.
잠깐 들렀다 갈 분이면 조금 아까울 수 있지만 반대로 산을 다녀오거나 절에서 진득이 계실 분에게는 오히려 싼 편입니다.
아무튼 정족산성 남문을 지나 여러 고목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금세 전등사의 가람이 나옵니다.
시간이 여유가 되고 날도 좀 좋으면 절도 한 번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날이 좀 궂네요. 비도 생각보다 많이 오고요.
바로 찻집으로 가고 싶어 지도상에 표시된 약사전으로 갔는데 어째 전혀 찻집이 있을 분위기가 아닙니다.
지나가던 보살님에게 여쭤보니 이쪽이 아니라고 길을 알려주셔서 덕분에 찾았네요.
지도상에는 그냥 화장실로만 나와 있는데, 아무래도 수정 요청을 해놔야겠네요.

드립커피와 에이드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차가 주력입니다.
주방에 얼핏 보이는 개완들도 그렇고, 매장 한편에 팔고 있는 다기들만 봐도 커피는 덤 느낌이네요.
그래도 잠은 좀 깨고 싶고 한 두세 시간은 앉아 있을 예정이니 첫물 녹차와 다과 세트를 주문해 봅니다.

녹차는 개완에 우려 나옵니다. 개완 위쪽에 구멍이 있는 녀석이라 따르기 쉽네요.
저 개완 외에도 작은 텀블러에 따스한 물을 담아 주시는데, 다 마시고 계속 우려 가며 마시면 됩니다.
한 네 번 정도 우릴 양을 주시는 것 같아요. 세 번 우렸는데도 텀블러에 물이 제법 남아있었거든요.
찻잎은 어떤 찻잎인지 마시고 구별할 정도의 안목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마시는 내내 기분 좋아지는 녹차였습니다.

일회용기보단 접시에 담아주셨으면 어떨까 싶었던 다과 세트.
찻집에서 그릇도 함부로 쓰긴 힘들고, 관리도 곤란하니 이해는 갑니다.
연팥빵... 원래 저런 관광지 팥빵 계열은 정말 안 좋아하는데 은은하게 단 맛이 뒤에 남아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집에도 하나 사서 가봐야겠네요, 딸이 좋아할 것 같아요.


강화도에서 공보의로 오래 일한 친구에게 참 한적하니 좋다,라고 말하니 운이 참 좋다고 하더군요.
확실히 한 시간 반쯤 앉아있고 나니 평일 오전임에도 관광버스들이 들어오는 모양인지 엄청나게 북적이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주말에는 절대 이런 고즈넉함을 느낄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그래도 두 시간 정도, 정말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빗소리와 조용한 절, 그리고 맛있는 차.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또 오전에 갑자기 쉴 일이 생기고, 비가 온다면 여길 떠올리게 될 것 같네요.
죽림다원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2026.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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