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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바다지기 2018. 5. 27. 20:44 댓글확인

요즘 통 영화를 볼 일이 없었다. 연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지라 어벤저스도, 데드풀도 그다지 영화관까지 찾아가서 보고 싶지 않았다. 뭐 좋은 핑계이긴 하지만, 사실 영화를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던 게 컸다. 영화 볼 돈으로 술 마시느라 바빴던 4, 5월이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잘 추스르고, 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일상이 돌아오자 다시 CGV 어플을 뒤적이게 된다. 그러다 칸 영화제에 초청받은 버닝이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고, 오랜만에 보는 영화로 낙점했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줄거리는 물론이고 포스터도 보지 않고 찾는 편이다. 어차피 해설이나 배경 설명은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이기에,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 진짜 스티븐 연이랑 똑같이 생겼다.’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봤으니 말 다 한 셈이다.

 

맨 처음 막이 오르고, 아래에 원작으로 무라카미 하루키헛간을 태우다가 나오면서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원래 그다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최근에 읽었던 기사단장 죽이기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조금씩 그의 소설을 사서 읽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원작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작중 몇 대사는 굉장히 하루키의 소설에 나올 법 한 것이었고, 영화를 보며 소소한 즐거움이 됐다.



버닝을 보다 보면, 이 영화가 문학적인 이야기를 우리 현실의 이야기로 확장하고자 무던히 노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세 명 뿐인 주연이지만, 양 극단의 두 사람과 중간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정의하기 어려운 한 명을 넣음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를 대입할 수는 없지만, 공감하게 만드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해준다.



자아의 실현이라는 따분할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도 계속해서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는 미스터리이다. 쏟아져 나오는 은유, 모순되는 증언, 변화하는 주변, 그리고 결정적이지 않은 증거들을 통해 작품의 신비는 점점 깊이를 더해간다.



크레딧이 오르고 상영관의 불이 켜질 때까지도 이 영화 안에 도대체 몇 개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 연쇄살인범의 살인과 그에 대한 복수극인지, 오해속에 미쳐간 청년이 저지른 비극인지, 그저 모두 글 속의 일인지, 그저 빚에 시달린 한 젊은 여성의 일탈과 그로 인한 해프닝인지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계속해서 연상된다.



내가 생각하는 버닝이라는 영화는 꼭 극중에서 나오는 대마초 같은 영화다. 웃긴 이야기도, 슬픈 이야기도, 어이없이 웃어 넘길 수 있는 이야기도 만들어 준다. 하지만 그런 환각 속에서도 자아의 실현이라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언급됐던 것만은 모든 이야기에서 놓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에서도 지금의 청년 세대가 겪는 고충을, 그리고 스스로를 알아가고자 하는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



오랜만에 정말이지 즐겁게 본 영화였다. 물론 나올 때 머리가 조금 지끈거릴 정도로 어려운 영화기도 했지만, 답도 없이 어려운 스도쿠를 푸는 것이 아닌 설명서 없는 블록 마냥 재료를 쫙 깔아 놓고 마음대로 만들어 보라고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조립을 하던, 감독이 원하는 모양이 나온다는 것. 그게 아마 칸 까지 이 영화를 날린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나중에 집에 와서 신해미역을 한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봤는데, 무려 데뷔작이었다. 그 연기의 깊이에 꽤나 크게 감동을 받은 지라 더욱 놀랍다. 배우를 믿고 영화를 고르는 편은 아니지만, 몇 명 좋아하는 배우가 있긴 한데, 왠지 한 명이 더 추가될 것 같다. 그리고 원작인 헛간을 태우다는 사서 읽을 예정이다. 요즘 독후감을 영 못 쓰고 있었는데 이걸 계기로 다시 쓰게 될 것 같다. 가뜩이나 부족한 글 솜씨, 놀아봐야 늘 리가 없다. 핑계거리 있을 때 달려보자.


버닝 (BURNING,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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