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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

바다지기 2017. 3. 15. 19:19 댓글확인


얼마 전에 J가 자취를 하고 있는 도쿄에 다녀왔다. J의 입시가 끝나 곧 도쿄의 자취방을 정리할 예정이기에 마지막으로 놀러간다는 좋은 핑계도 있었지만, 두 달 쯤 전부터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들에 푹 빠져있던 나에겐 도쿄란 도시는 꼭 한 번 가고 싶은 장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읽은 모든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의 도쿄를 배경으로 했고, 산시로도 마찬가지로 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도쿄에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들고 갔기에, 아쉽게도 산시로 연못에서 이 책을 읽어보진 못했다. 하지만 책 속에서 익숙한 지명이 지나갈 때 마다 그 풍경이 머릿속에서 펼쳐진다. 짤막한 문장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 다가온다. 그동안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을 읽으면서 처음 있는 일이기에 경험의 소중함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된다. 이러한 배경 덕분일까, ‘산시로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책이 됐다.

 

산시로는 이 작품의 주인공인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속된 말로 촌놈이다. 거기다가 눈치도 없고, 아무래도 적극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점은 글의 시작인 기차 안에서도 드러나는데, 결국 여인에게 신랄한 말까지 듣고 만다. 이러한 그가 도쿄에서 생활을 하며 여인에게 연심을 품고, 다시 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주변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산시로의 전부다.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했으니, 읽은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이 소설은 연애소설인가 성장소설인가? 연애소설이라기엔 뭐 하나 제대로 이뤄진 짝도 없이 허무하게 끝났고, 성장소설이라기엔 그 성장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도 이 소설이 나에게 뭘 말하고자 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산시로가 이십대에 차인 얘기. 정말 이게 끝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건 우리의 삶이다. 아무리 고매한 척 해봤자 산시로는 이제 막 상경한 대학생이다. 연배로 따지면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답은 간단하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록 도쿄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멋진 캠퍼스를 보고 나름의 열의도 가졌고, 사랑도 했고, 허무하게 끝난 적도 있다. 그냥 딱 산시로의 삶이다. 내 주변에도 요지로 마냥 별난 친구도 있었고, 히로타나 노노미야 같은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등장인물이 갖는 의미를 하나하나 지워나가다 보니 조금은 산시로가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것 같다. 방황하며 조금씩 커가는 모습. 그리고 이 맘 때 겪는 열병같이 왔다 가는 사랑 이야기다. 비록 깔끔한 결말도 없지만, 그 과정 속에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충분히 담겨있다. 바로 일상 속에서의 성장, 그리고 사랑이다.

 

길 잃은 어린 양’. 맨 처음엔 산시로를 말하는 줄로만 알았지만, 이 작품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은 양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모두들 완성되지 않은 채, 방황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산시로는 이미 우리 모두가 갖고 있던 이야기다. 그리고 바로 지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산시로 (三四郞, 1908).

나쓰메 소세키 (夏目漱石) , 송태욱 옮김,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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