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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가 조금 불편해서 그런지, 늦잠을 자 버렸다.

아무리 겨울이라 일출이 늦긴 해도 일출을 찍고자 마음먹은 날에 여섯 시에 일어나다니...

 

시간이 많이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일단 일출암을 향해 급히 움직여 본다.

 

 

지도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일출암까지 가는 길은 무척이나 험했다.

눈이 오면 과연 여기까지 올 수 는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경사진 길들을 한참이나 올라가고 나니 차를 댈 만한 곳이 보인다.

 

차를 멈추고, 공사중이던 임도로 들어가서 해가 뜨는 방향을 보니 저 멀리 해가 올라오고 있다.

 

 

오는 길은 무척이나 궂었지만,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을 보니 그런 노고가 싹 잊힌다.

렌즈를 좀 더 잘 닦고 찍어볼 걸, 충분히 보정으로 지울 수 있는 정도지만 옥에 티 치고는 좀 크다.

 

그래도 새해 첫 일출, 소원까지는 안 빌었지만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어차피 무슨 소원을 빌던, 열심히 하루하루를 넘어가야 된다는 건 똑같으니까.

이럴 땐 잠깐 입이라도 벌리면서 감상에 집중하자.

 

 

내려오는 길에도 오른쪽 창가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계속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만큼의 감동을 사진으로 담아내진 못 했지만,

아마 올 한 해 동안 계속해서 기억에 남을 풍경이 아니었나 싶다.

 

 

원래는 일출암을 내려오고 나서 바로 도산서원에 갈 생각이었다.

다만 어째 하늘빛이 좋고, 근처에 선착장이 보이기에 왠지 멋진 사진을 하나쯤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무작정 차를 돌려 서부선착장에 들렀다.

 

 

금강산도 식후경... 아침부터 움직이느라 너무 허기진다.

일단 빵 한 조각 먹고...

 

 

전망대라고 써져 있는 곳을 향해 갔는데 뭔가 묘지가 나오질 않나 굉장히 당황스러운 길이다.

 

막상 전망대에선 나무 때문에 별로 보이는 것도 없고...

그냥 돌아가자니 아쉬워서 산비탈을 따라 좀 더 걷는데 오른쪽으로 멋들어진 길이 보인다.

 


국내 여행을 다닐 땐 '뭐 한 번 더 오면 되지'라고 생각해서인지 사전 조사를 게을리하는 편인데...

이렇게 멋진 곳을 미리 안 알아보고 움직였다니,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든다.

 

안동호 한쪽을 가로지르는 '선성수상길'을 이렇게 만났다.

마침 겨울이라 낮게 떠서 길 위에 걸친 해, 산책 중이신지 길 위를 걸어가시던 부부.

 

항상 사진이란 건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멋진 기회를 선사한다.

계획에도 없이 들른 선착장에서, 떠돌다 만난 수상길에서, 딱 좋은 타이밍에 사진을 찍게 될 줄이야.

 

 

겨울이라 물안개가 잔뜩 핀 안동호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서리가 잔뜩 낀 벤치였지만, 잠깐 앉아서 찬 바람과 함께 즐기고 싶을 정도로.

 

 

멋진 풍경으로 눈호강을 한 뒤, 도산서원에 오니 마침 딱 개장시간이었다.

옛날에는 과거시험을 본 숲이 있던 곳, 이제는 안동댐으로 호수가 됐으니 말 그대로 상전벽해다.

 

 

처음으로 마주한 도산서원.

 

확실히 병산서원과는 다른 멋이 있다.

병산서원이 학교와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마치 작은 마을을 보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의 사림 하면 붕당으로 대표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분명 조선이라는 나라는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정신문화와 현실정치의 조화를 꿈꾼 이상 국가이고, 이러한 면에서 재평가를 받을 부분이 충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친명사대, 쇄국 등 지금의 우리가 보기엔 이해가지 않는 기조들이 많았지만, 결과를 보고 과정을 평가하는 것은 후대의 지나친 오만 아닐까.

 

지금은 그저 문화재이고, 옛 기능은 하나도 안 남았지만.

이러한 곳에서 후학 양성에 힘쓴 옛 성현들을 생각하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지 않나 생각이 든다.

 

 

우리에겐 한석봉으로 유명한 한호의 글이 걸려 있는 전교당.

한자는 배웠지만, 한문은 못 배웠기에 안에 잔뜩 적혀있는 글들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다.

 

 

 

멀리 안동호가 보이는 도산서원.

마지막으로 박물관을 둘러본 뒤 사람들이 많아지기 전에 떠난다.

 

아침 일찍 움직여 들른 덕에, 고즈넉한 서원의 느낌을 온전히 느꼈던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안동에서 인천은 꽤나 먼 길이니, 미리 끼니를 때우고 올라가야겠다.

시장에 들어서니 줄지어 국밥집이 있는데, 그중에 가게 앞에서 선지를 팔팔 끓이던 모습에 현혹돼 여기로 결정이다.

 

 

 

아무래도 지방으로 가면 1인상을 받기가 힘든 적이 많아 걱정했는데,

여긴 뭐 1인상 최적화를 해서 내어준다.

 

선지에 고기, 그리고 뜨끈하고 저렴한 가격.

안동에서 유명하다는 헛제삿밥은 안 먹어 봤는데, 아마 이거 미만일 것 같다. 국밥이 최고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가져다 드릴 찰떡을 몇 개 산 뒤, 이번 안동 여행을 마친다.

잘 먹고, 잘 보고. 행복한 주말이다.

 

2020.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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