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포영화를 싫어한다. 하지만 귀신이나 괴물 등이 배제된 스릴러는 굉장히 좋아하는데 ‘양들의 침묵’은 이러한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이다. 스릴러의 생명은 긴장을 일으키는 각종 장치들인데 이미 나온 지 15년이 넘어 영화에 등장하는 작은 소품들의 사소한 의미까지 밝혀진 이 영화가 아직도 생명력을 갖고 회자되는 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잘 만들어진 영화인지 알 수 있다. 두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마음을 놓고 볼 수 없는 영화, 다 알고 봐도 긴장감 넘치는 영화. ‘양들의 침묵’을 오랜만에 집에서 보기로 했다.
미제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를 둘러싼 각종 사건들, 이렇게 써놓으니 어느 나라 영화, 아니 안방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 한 이야기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게 전부다. ‘버팔로 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한니발 렉터’ 박사에게 접근하는 FBI 신입 요원 ‘클라리스 스털링’을 주인공으로 삼고, 스털링의 시점에서 영화는 진행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사람의 대다수가 주인공을 뽑으라고 한다면 아마 한니발 렉터를 뽑을 것이다. 저 평범한 이야기에 끝없는 긴장을 불어넣는 ‘앤서니 홉킨스’ 경의 연기는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이다. 이미 관련된 일화는 많이 소개됐지만, 그러한 배경지식 없이 단순히 그의 연기만 접하더라도 카메라가 그를 클로즈업 하는 순간만 기다리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그 순간보다 렉터의 흔들림 없는 시선을 잡아줄 때가 더 짜릿하다.
이 영화는 아픔을 통한 성장을 말하고 있다. 렉터는 영화 내내 스털링의 옛 아픈 기억들을 헤집어낸다. 수년간 수사에 비협조적이던 그가 스털링의 과거 얘기에는 그 대가로 수사를 돕는다. 렉터는 왜 스털링에게 그런 관심을 가진 걸까? 그를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 했던 사람들, ‘잭 크로포드’나 ‘칠튼’ 박사 모두 자신의 슬픈 과거가 없다고 생각했거나 숨기려 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렉터는 스털링의 불우한 과거가 아닌, 그러한 과거에 대한 솔직함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작중 분명 악역인 렉터는 스털링에 대해서만은 마치 조력자처럼 행동하는데, 이러한 모습을 통해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성장의 중요함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렉터를 통해 하나하나 짚어낸다. 잘 생각해보면 렉터는 수사에 도움을 줬을지언정 스털링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준 것도, 그를 정신적으로 치료하려 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제목인 양들의 침묵은 바로 이러한 성장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양들의 비명으로 표현된 스털링의 어두운 과거와 그에 대한 트라우마의 극복. 사실 이렇게 주제만 적어 놓으니 굉장히 훈훈하다. 마치 한 청춘남녀가 운동장에서 땀 흘리는 장면이 나오고, 영화가 끝날 즘에는 목에 금메달을 거는 장면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이걸 스릴러라는, 그것도 잔혹한 범죄를 소재로 한 장르를 통해 표현해냈기 때문에 양들의 침묵이 오늘날까지 호평 받는 게 아닐까?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 1991).
버닝. (3) | 2018.05.27 |
---|---|
라이프 오브 파이. (0) | 2018.04.16 |
원더풀 라이프. (0) | 2018.01.08 |
위대한 쇼맨. (2) | 2018.01.07 |
시간을 달리는 소녀. (2) | 2017.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