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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일도 많아지고, 본격적으로 피곤해지기 전에 연휴를 껴서 연차를 냈다. 조금 갑작스럽게 짠 여행이기에 결국 만만한 일본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오후 반차를 쓰고, 차에 실어놨던 가방과 함께 공항에 도착하니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라운지에서 간단히 시간을 때워본다.

 


일본 정도 거리는 굳이 항공사 신경 안 쓰고 다니고자 하기에, 제주에어를 이용해본다. 한 시간 정도, 가져온 책도 제대로 읽기 전에 후쿠오카 시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일본도 연휴가 낀 주여서 그런지 숙소가 하나같이 비쌀뿐더러, 방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급하게 잡은 비즈니스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W와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카스 강에 왔다.

 


태풍이 올라오는 중이라 그런지 바람도 평소보다 거세고, 빗방울도 날린다. 그래도 지붕 딸린 벤치에 앉아 있다 보니 책 읽으며 쉬기엔 제법 괜찮은 날씨다. 굳은 날씨 덕에 손님이 잘 모이지 않는지, 멀리서 호객하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 중 하나에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있다. 이왕이면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서 책을 가져왔는데, 이럴 때 아니면 읽을 시간도 마땅치 않을 것 같다. 책을 읽기엔 조금 어둡지만 평소에는 어두운 밤눈이 이럴때는 유난히 밝아지는 느낌이다.

 


책을 읽다보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어느새 도착한 W와 함께 이번 여행 첫 식당인 카즈토미에 왔다. 지난 여행에는 자리가 없어 옆의 사케이치방으로 갔는데, 이번엔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미리 컨시어지 서비스로 예약을 하고 왔다.

 


고독한 미식가에도 소개된 가게인 만큼이나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지 가게 구석에는 한국어로 된 메뉴가 있다. 다녀간 사람들이 손수 수정한 오역이나, 친절하게도 고로상 메뉴라고 연필로 적혀있는 이 한국어 메뉴판이 그냥 메뉴와 가격만 적혀있는 일본어 메뉴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바늘 가는 곳에 실 가듯이, 맛있는 식사에는 술이 따르기 마련이다. 일본주는 사케나 쇼츄나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식에 곁들일 술이 이 두 종류를 빼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일본주 중에서는 제일 좋아하는 부류인 보리로 만든 쇼츄를 한 병 시켜본다.

 



기본 찬거리와 얼음이 나온다.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입을 풀어주자.

 


시작은 고마사바로 한다. 냉장고에서 나오는 생선의 질이 범상치 않더니만, 결과물도 기대 이상이다. 평소에 강한 맛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곳의 음식은 여태 일본에서 먹어본 음식 중에서도 유난히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느낌이다.

 



이렇게 된 이상, 가게에서 파는 생선은 다 먹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아지낫토’, ‘이와시타다끼를 차례로 시켜본다. 단순히 말하자면 재료가 맛있는 거겠지만 단순히 그 뿐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확실히 질 좋은 재료와 좋은 솜씨가 어우러진 곳이다.

 


약간 간이 센 음식도 궁금해서 버터구이 닭 간을 시켜봤다. 닭 간은 평소에도 아주 좋아하는 재료인데, 부드러운 음식들 뒤에 넣으니 그 향이 평소보다 더 강하게 다가온다.

 



다음은 어디서든 나오지만, 제대로 하는 곳은 흔치 않은 미소시루’, 장국을 시켜봤다. 개인적으론 일본된장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지라 향 좋게 잘 끓였다.’, ‘다른 가게보다 맛있다.’ 정도로만 느꼈는데, 일본에서 수학중인 W의 입맛에는 꽤나 충격적으로 맛있는 국이었나 보다.

 


국으로 속을 넘겨줬으니 약간은 간식 느낌으로 미조레아게를 시켜본다. 슬슬 배도 찬 것 같고, 아까 눈여겨 봤던 오챠즈케를 마지막으로 정리해야겠다.

 


그냥 오챠즈케를 시키자니 뭔가 아쉬워, 나름 이곳의 특산물인 명란젓이 올라간 오챠즈케를 주문했다. 일본에서는 멘타이코라고 불리는 명란젓은 의외로 한국에서 넘어간 음식이다. 애초에 멘타이명태의 음차에 가까운 형태이기도 하고, 일본에서도 한국 유래로 소개되기도 한다. 뭐 요즘은 정작 한국보다 일본에서 명태가 더 많이 잡힐 것 같지만...

 


시원하게 오챠즈케로 마무리를 짓고 나니, 소화가 되 버렸다. 결국 근처의 사케이치방에 들러 계란말이, 야끼소바,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꼬치요리인 츠쿠네를 시킨다. 여기도 명란젓이 들어가 있는데, 계란말이에 명란젓이라니...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차례로 나온 음식들을 처리해가며, 가득 찬 배와 함께 하루를 마쳐본다. 첫날, 겨우 한 끼 먹었을 뿐인데 만족도가 너무 높아 걱정이다. 내일도 과연 이 정도 먹고 다닐 수 있을까?

 

201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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