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천해변 쪽에 오면 멋진 카페가 참 많습니다.
여기보단 조금 더 북쪽의 보헤미안박이추 커피는 아침 챙겨 먹기 귀찮을 때 참 좋은 선택지가 되어주는 곳이었죠.
그래도 강릉에 왔는데 맛있는 커피 한 잔은 마셔야지 싶어 강릉에서 해변을 따라 올라가던 중,
테라로사가 사천에도 가게를 낸 걸 보고 차를 세웠습니다.

마치 주택의 정원처럼 배치된 잔디밭이 눈에 띕니다.
내심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면 더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나 강아지들이 뛰노는 모습이 어우러지면 더 멋진 정원이 될 것 같습니다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겠죠.
하늘도, 바다도, 계속해서 푸른빛만 보다가 연한 녹색으로 눈을 채우니 또 다른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커피에 제일 어울리는 먹거리를 고르라면, 전 단연코 초콜릿을 고를 겁니다.
강릉 블렌드 한 잔에, 다크 초콜릿 하나.
따스한 커피에, 쌉쌀한 초콜릿이 입에 들어오니 정신은 번쩍 들면서도 마음은 놓이는 기분 좋은 상태가 됩니다.
강릉에 도착한 지는 한참 됐지만, 뭔가 이제야 여행을 왔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네요.
확실히 저에게 여행은 '쉼'이란 의미인가 봅니다.


아내는 피곤한 지 차에서 한숨 쉬러 가고, 저는 2층의 테라스에 올라와 봤습니다.
앞의 소나무 사이로 살짝살짝 비치는 푸른 바다가 참 좋네요.
이번에 회사 근속 기념으로 받은 포인트로 아이패드를 사 봤는데, 미니만 쓰다가 11인치가 되니 책 읽기가 참 편해집니다.
약간 익숙한 느낌이 든다 했더니, 일본에서 파는 문고본에서 여백을 좀 빼면 딱 이 크기가 아닐까 싶네요.

책을 꽤 읽어 나갔는데도 아내가 오지 않아 연락을 했더니 해변가에서 쉬고 있다고 하네요.
같이 가기로 해놓고선, 먼저 가다니...

가게 바로 앞의 길을 건너면 바로 해변이 펼쳐집니다.
안전요원이 없고, 정식 해수욕장은 아닌지라 물놀이는 안 되지만 그래도 모래놀이는 충분히 가능하겠죠.
내심 집에 두고 온 의자가 다시 아쉬워지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늘도 곳곳에 있고 잠깐 앉아서 멍하니 바다를 보기엔 충분합니다.
엉덩이에 묻은 모래야 털면 그만이죠 뭐.

두시 반쯤, 막상 집에 돌아가기엔 애매한 시간입니다.
애써 운전해 여기까지 온 것도 좀 아깝고요.
묵호를 갈까 했다가, 안인에서 정동진까지 가는 길이 기억나 묵호로 가던 길을 꺾어 해변으로 향했네요.
바닷가를 따라가는 길에 있던 등명낙가사, 뭔가 이름이 기억에 남아 이번 기회에 한 번 들러봤습니다.



역사는 꽤나 오래된 고찰인 듯합니다만, 절 자체는 굉장히 현대적인 느낌입니다.
정림사지 석탑을 본떠지었다는 저 탑도, 금속 기와가 잔뜩 올라간 지붕도, 사실 그리 좋아하는 형태의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결국 바뀌는 시대의 흐름이겠죠.
아쉬워하는 건 이미 충분히 흐름에 떠밀려 살다가 잠시 도망온 곳에서마저, 그 흐름을 느끼고 싶진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도 절 위치는 참 좋네요.
한 200년 정도 지나면 이 모습마저도 풍화되어 조금은 지금에서 벗어나겠죠.

금속 기와 불사는 처음 봤는데, 매직팬으로 적는군요.
이 녀석이 조금 더 싫어진 순간입니다.
조금만 더 지나면 레이저 프린터로 각인할 것 같아요.

절을 살짝 내려오니 갑자기 때 묻은 탑이 하나 보입니다.
고려 전기에 세워진 탑으로 보인다는데, 확실히 이 질감과 세월이 묻은 느낌은 격이 다르네요.
자체가 가진 격과는 별개로, 시간이 오래 지난 물건들은 별도로 그 격을 만들어나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의 깔끔하고 큼직한 가람보다는, 오히려 이쪽이 저에겐 진짜로 느껴지네요.

아내가 닭다리를 들고 있다고 말해서 조금 웃겼던 석상들.
닭다리는 둘째치고 그냥 생긴 게 재밌네요.
마지막 나가는 길까지 웃으며 나갈 수 있다니 좋은 곳입니다.
오늘 하루, 짧았지만 참 좋은 구성의 여행... 아니 나들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요?
내내 흐린 날씨에 걱정했습니다만, 그래도 바닷가에서 푸른 하늘도 만났고 밥도, 커피도, 풍경도 모두 좋았던 반나절이었습니다.
작은 일상 속에서 큰 경험을 얻은 기분이 드네요.
한동안 게으름을 피워 틈만 나면 집에서 뒹굴거리기 바빴는데, 잠깐이라도 틈을 내서 움직이는 버릇을 들여야겠습니다.
2025.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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