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하며,
회사에서 근속 기념으로 포인트를 꽤 크게 줬는데, 원래 갖고 있던 포인트와 합치니 iPad도 충분히 살 수 있겠더군요.
갖고 있던 iPad mini가 고장 난 지도 거의 1년 정도 지났습니다. 막상 없으니 없는 대로 잘 살아왔죠.
그래도 오랜만에 가진 태블릿으로 뭘 해볼까 생각하다 보니 역시 전자책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알라딘을 깔고 나니 예전에 읽다 만 책이 한 권 보입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몇 권 더 보이긴 했지만, 역시 읽다 만 책에 제일 먼저 손이 가네요.
p.7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
누구든지 자신만의 가치관, 상식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당연하게도 나를 기준으로 남을 재단하는 기준이 되고, 이것은 마냥 나쁘게 볼 일도 아닐 겁니다.
반대로 이러한 기준이 없다면 줏대 없는 사람, 휘둘리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과신, 더 나아가 맹신하는 것은 분명히 여러 문제를 낳게 됩니다.
너무 믿지 않는 것, 참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의외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게 고약한 것은 내가 오히려 여유를 둬도 좋은 가까운 관계를 대할 때일수록, 더 나를 강하게 믿게 된다는 점이죠.
p.14
'다만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잠시 벗어났지요. 그것만으로 놀라운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생각이 온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더는 그 속에 매몰되진 않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 지나가다 들은 얘기로, 사람은 '없다'를 생각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바나나를 생각하지 마! 하는 순간, 머릿속에 선명하게 바나나의 모양이 떠오르는 게 사람이죠.
쉼 조차도, 쉼으로써 인식해야만 쉴 수 있는 게 사람이기에,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떠한 반열에 오른 사람이 아니고서야 분명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이 말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0으로 만들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을 지울 수는 없어도, 그 흐름을 조금은 편안하게 가져갈 수는 있을 테니까요.
연휴에 걸려온 고객사의 전화에,
' 연휴 때 안 받는다고 무슨 일 있겠어? 무시하자 '
' 에휴, 오죽하면 연휴 때 전화를 했겠어, 돕는 셈 치고받자 '
' 아! 왜 쉬는 날에 전화하고 XX이야!! '
무엇이 정답인지는 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마지막과 같은 생각은 갖지 않고 살아볼까 합니다.
p.26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하든지 간에 부모님에게 변하지 않는 조용한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저에게 중요했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저 또한 쉽게 다짐을 하곤 합니다.
'내 자식이 선택한 길은, 하나의 인격체로써 그 길을 존중해 주자'
하지만 이것이 과연 그렇게 쉬운 일일까요, 부모에겐 자식에 대한 존중만큼이나 걱정도 함께하기 마련입니다.
한 세대를 먼저 살아간 사람으로서 봐 온 많은 사례와, 그를 기반으로 한 우려도 있죠.
과연 나는 내 자식이 잘 나가는 사업체를 그만두고,
삭발을 한 뒤 숲 속에서 비구로써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하면 조용히 응원할 수 있을까요?
참 어려운 일일 것 같습니다. 분명 해야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글쓴이만큼, 글쓴이의 부모가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p.69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항상 가질 수는 없지만 여러분이 필요한 것은 항상 가질 수 있습니다.
불교를 전문적으로 탐구한 적은 없지만,
소유하고자 하는 '욕'에서 수많은 고통이 생긴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의 차이는 참 크다 생각합니다.
내가 몸에 걸치고 있는 수많은 물건, 혹은 몸에 걸칠 수는 없어도 갖고 있는 많은 것들 중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뭐,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의, 식, 주 말고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더 큰 행복을 위해서는 원하는 것이 많아지게 됩니다.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만 하더라도,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갖게 되면 행복한 것이죠.
물론 의자 말고도 참 많은 것들을 가져야 하는 요즘, 생각을 한 번 정도는 해볼 만한 글귀였네요.
p.81
저에게도 사회에 이바지할 것이 있었습니다.
사실 읽으면서 조금 갸우뚱했던 부분입니다.
속세의 많은 것을 내려놓고, 성공적으로 승려의 삶을 살던 그가 갑작스럽게 다시 사회로 돌아온 뒤
겪는 여러 고통과 이겨내는 과정은 읽는 저에게는 마치 다른 두 명의 작가가 글을 쓰는 듯한 느낌마저 줬습니다.
내심 인간이 얼마나 사회적인 동물인지를,
속세를 떠난 숲 속 절에서마저도 사람은 작은 공동체와 사회를 이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부분입니다.
비록 그 사회의 모습은 크기도, 모습도, 지향점도 모두 다르겠지만요.
아무튼 없이는 못 사는 게 사람인가 봅니다.
보통 나는 대단해! 이야기를 쓰는 게 요즘 트렌드라 생각했는데, 인간미가 느껴져서 좋기도 했었습니다.
p.100
육신은 말하자면 우리가 착용하는 우주복과 같은 겁니다.
어찌 보면 과학적으로도 옳은 말입니다.
모든 생명은 기본적으로 DNA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의 몸은 어떻게 보면 제멋대로 생긴 일종의 포장 박스인 셈이죠.
이 세상이, 우주가 얼마나 험한 곳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우주복 또한 좋은 비유가 될 것 같습니다.
매일 오는 쿠팡박스 정도면 왠지 작은 위험에도 구겨질 것 같으니 말이죠.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것은 DNA의 본질이 아닌 정신의 본질입니다.
종교적인 비유가 과학의 원리와도 한 다리 건너서 만나는 것이 재미있어 한 번 떠들어 봤네요.
p.102
내가 알겠지
어떤 번거로운 일을 할 때, 늘 들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알아준다고 그런 일을 사서 하냐는 걱정, 솔직히 말하면 오지랖이죠.
내가 알겠지.
남이 알아주는 것은 덤입니다. 가끔은 받기 싫은 싸구려 상품일 수도 있죠.
어차피 내가 행한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p.110
두 사람은 한 번도 서로를 당연하게 여긴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안락사가 진행되는 부분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부분입니다.
눈물이 흔해질 만큼 나이를 먹은 것은 아니었기에 정말 슬퍼서 난 눈물이 맞을 겁니다.
함께 걸어온 부부가, 부모와 자식이, 개인과 세상이 이별하는 모습은 너무도 슬픈 모습이니까요.
사람이 죽는 묘사가 그리 드문 묘사도 아니건만, 이상하리만큼 이 책에서의 묘사는 슬펐습니다.
마치 제가 그 자리에 서서 함께 보고 있는 듯한, 시간에 따른 잔잔한 묘사 때문일까요?
아니면 저도 이제 아내도, 자식도 있는 입장에서 예전과는 없던 공감의 끈이 더 굵어진 걸까요?
너무도 당연하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나서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끝마치며,
독서를 마치고 저자가 어떻게 됐는지 한 번 찾아봤습니다.
루게릭 병을 선고받은 환자가 기적처럼 오래 생존하는 경우가 없던 것은 아니니까요.
아쉽게도 그는 이 전자책이 발행된 날보다 몇 개월 앞서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그의 마지막과 관련된 얘기가 없어 조금은 기대했는데, 뻔한 기적은 오히려 없나 봅니다.
사실 에필로그에 그의 마지막 편지가 있습니다.
그가 안락사를 선택한 것을 알고 나면,
너무도 유언 같은 글이었는데 왜 저는 그가 어느 정도 회복돼서 정말 좋은 곳으로 간 줄 알았으려나요.
책의 내용이 특출 나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사회적으로 잘 나가던 사람이 모든 걸 내려놓고 머리를 깎는 모습은 여느 드라마보다 흥미로운 전개입니다만,
반대로 요즘처럼 강한 자극이 흔한 시대에 비할 바 없는 자극은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태도, 타인에 대한 태도도 비슷한 듯 좋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을 통해 나눠지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치를 다루는 책만 모아도, 제 수준으로도 책장 한 칸은 채울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내용에서 이 책의 어디가 저로 하여금 눈물을 내고, 착각을 일으켰을까요.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안락사라는 결말이 저에겐 조금 충격으로 다가온 듯합니다.
혹자는 자살이라고 폄하할 수 있고, 종교적으로도 이는 가타부타 말이 많은 행위일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은, 경쾌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슬펐습니다.
여느 죽음과 같이 말이죠.
아니죠,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죽음이 갖지 못하는 경쾌함과 아름다움마저 가진, 그런 죽음이었습니다.
책의 본질이 안락사를 다루는 것은 분명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안락사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끔 되는 책입니다.
위에서 말했듯, 이 책에서 중요하게 말하는 가치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형태로 말해온 가치기도 하니까요.
궁금하네요.
정말 내세가 있다면 그는 자살한 죄인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인생을 끝까지 충실하게 채운 위인일까요.
아니면 내세가 없기에, 자신의 인생의 끝마저 선택할 수 있던 걸까요.
그는 마지막까지 내세를 믿었을까요.
만약 믿었다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어떠한 변론을 했을까요.
믿지 않았다면 왜 믿지 않았을까요.
새로이 생긴 궁금함을 풀어줄 사람은 이제 없으니, 살다 보면 어떠한 답을 얻게 되겠죠.
오랜만에 생각을 많이 하게 된 독서였습니다.
아, 그리고 토마스 산체스의 그림은 한 번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지네요.
좋았던 글귀들,
p.33
정신을 온전하고 바르게 유지하려면, 날카롭고 효과적으로 발휘하려면 때로 쉬게 놔둬야 한다.
p.46
지식은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한다.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하다.
p.49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p.51
'내가 틀릴 수 있어, 내가 다 알지는 못해'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확실히 행복해질 방법은 흔치 않습니다.
p.65
번뇌를 완전히 내려놓는 것은 적절한 목표가 아닙니다. 번뇌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죽은 사람뿐입니다.
p.76
우리는 고요함 속에서 배운다. 그래야 폭풍우가 닥쳤을 때도 기억한다.
p.89
알라신을 믿되 타고 갈 낙타는 묶어두라
p.114
불교도로서 우리는 원래의 죄가 아닌 원래의 순수를 믿습니다.
p.116
죽음을 삶의 반대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탄생의 반대에 더 가깝지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지은이,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옮긴이, 박미경
펴낸이, 김선식
펴낸곳, 다산북스
전자책 발행, 2022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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