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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자던 만큼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묘하게 피곤한 아침이다. 잠을 깊게 못 잔 걸까, 아니면 바뀐 잠자리가 영 익숙하지 않았던 걸까. 침대 위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잠들지도 못한 채 삼십분 정도를 뒹굴다가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다. 지난번 비즈니스호텔은 간단한 식사를 차려줬는데, 여긴 중식 뷔페를 준비해놨다. 어제 체크인 할 때 보니 장사 중이던 가게였는데, 그래서인지 음식의 수준도 준수한 편이다. 맛있는 식사로 배를 불리고 나니 조금은 기운이 나는 것 같다.

 


오후까지 짐을 맡기고 오늘의 첫 목적지인 죠죠지로 향한다. 나오기 전에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 도쿄는 맑은 뒤 흐림이라는데 이미 하늘엔 구름이 가득 껴있다. 아무래도 어제처럼 멋진 하늘을 보긴 힘들 것 같다.

 



어제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는데 아마 이 곳에서 울린 소리인 것 같다. 시간이 맞는다면 종을 울리는 모습도 꼭 카메라에 담고 싶지만, 흐려서 그런지 은근히 쌀쌀한 날씨에 종루의 사진만 담고 갈 길을 재촉한다.

 


도쿄타워의 야경과 함께 봤던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의 모습이다. 어젯밤에는 절의 뒤편을 아름답게 수놓던 모습이 낮에, 그것도 흐린 날에 보니 꽤나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풍경은 조금 쌀쌀하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들려서인지 주변은 꽤나 사람냄새가 난다.

 


안에서는 법회가 한창이었기에 현판 사진만 짧게 담고 가람 뒤편으로 들어간다.

 


멀리서 전시실 간판이 보이기에 가봤지만, 아직 열기까진 시간이 제법 남았다. 이상하게 어제보다 쌀쌀한 날씨에 어디든 안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본전옆에 있는 안코쿠덴에 가니 도쿠가와 가문 영묘로 가는 길이 보인다. 참배할 생각은 없다만, 여기까지 와서 안 보고 가는 것도 섭섭한 일이다.

 


어젯밤에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던 동자승들이 영묘 가는 길을 따라 줄지어 서있다. 밝은 날에 보니 표정이 보여서일까, 하나하나 제법 귀엽게 생겼다. 조금 이따 나오는 길에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봐야겠다.

 



멀리서 보기에도 위엄을 갖춘 모습이 딱 봐도 지체 높은 사람을 모신 곳이라는 티를 낸다. 에도 막부의 실권자인 쇼군’. 그 가문인 도쿠가와 가문의 영묘이니 아무렴 당대에서 가장 높은 격식을 갖춘 곳 중 하나일 것이다.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전시실의 티켓과 합쳐 할인 판매를 하고 있었기에 영묘와 전시실 표를 함께 산다. 옆으로 보이는 멋있는 문으로는 출입이 불가하고, 옆으로 난 작은 쪽문으로 영묘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기 전의 죠죠지와 현재의 죠죠지를 비교한 지도가 가장 먼저 보인다. 쇼군 가문의 영묘가 있는 절 치고는 그 크기만 웅장하지 구성 자체는 별 볼 일 없다 생각했는데, 글을 읽어 보니 본래의 절은 거의 다 파괴되고 근래에 들어 재건한 절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람의 구성 또한 크게 바뀐 것을 지도를 통해 알 수 있다.

 


영묘에는 어떤 사람의 무덤인지 하나하나 현판이 써져 있지만, 한자를 읽고 이름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일본사에 빠삭한 것은 아니기에 영묘를 이루는 작품 하나하나의 조형에 집중해서 돌아본다. 크게 멋있는 구석은 없지만, 도쿄 한 가운데에 이렇게 고요를 지키는 공간이 있다는 점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마치 주변을 둘러 심어진 나무들이 시간의 흐름을, 그리고 복잡한 도시를 거부하는 느낌이 든다.

 


나무 중에는 동백도 몇 그루 있었는데, 멀리서 보기에 꽃잎에 소복하게 쌓여있는 눈이 너무 아름다워 카메라를 들고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눈이 아니라 꽃잎이 살짝 흰색으로 물든 것이었는데, 정말이지 겨울에 어울리는 색이다.

 


영묘를 나와 전시실로 향하는 길에 동자승들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바라본다. 묘하게 다른 얼굴들, 손마다 들고 있는 바람개비, 그리고 털모자까지. 분명 오래된 녀석들도 아니고 동자승마다 표정이 크게 다른 것도 아니건만, 적절하게 묻은 시간이 작은 조각상들에게 개성을 심어준다.

 


전시실이 열리는 시간까지 10여분 남았기에 절 구석구석을 돌아보기로 한다.

 


절 한쪽 구석에는 제법 그럴싸한 추모 공간을 마련해놨다. 새겨진 글을 읽어보니 전쟁이 끝난 후 본토로 귀환하던 함선이 불법적인연합군의 포격으로 가라앉고, 그로인해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공간이었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죽은 안타까운 일이건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천벌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서로의 불행에 있어서 온전한 마음으로 안타까워 할 수 없는, 이런 불편한 관계가 하루빨리 종식되길 바랄 뿐이다.

 


절의 경계를 따라 돌다 보니 산게츠몬보다 더 오래되 보이는 문이 나온다. 죠죠지의 옛 정문이라는데, 복원 과정에서 가람의 위치도 크게 바뀌었는지 어째 위치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 문 덕에 전화 속에 사라진 절의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다. 적어도 지금보단 훨씬 내 취향에 맞지 않았을까?

 


아쉽게도 지금의 죠죠지는 온전한 절이라기 보단, 그 기능만을 살려놓은 모습에 가깝다. 절 자체의 철학이 없어 보이는 가람의 구성 때문인지 볼수록 하품이 난다. 산 속에서 풍경과 어우러진 한국의 고찰이 그리워진다.

 


속으로 잔뜩 투덜거리며 경내를 돌다 보니 시간이 제법 지났다. 다시 돌아온 전시실 앞은 출입금지 표시 대신에 입장권 판매소 안내문이 걸려있다. 뭔가 이곳저곳 돌다가 돌아오니 입구가 열린게 꼭 포켓몬스터 게임을 하는 것 같다.

 


내부는 아쉽게도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다. 다만, 안에 전시된 죠죠지의 모형과 탱화는 돈을 지불해서라도 볼 가치가 충분한 것 같다. 모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나 즐거운 공간이 될 것이다. 아주 정교한 죠죠지의 모형에, 차라리 이정도면 밖의 절은 소박한 느낌으로 짓고 디오라마에 제대로 신경을 써서 옛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전시실의 의자에서 잠깐 앉아 지친 다리를 풀고, 지도를 켜 다음 갈 길을 찾아본다.

 

201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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