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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essay/2017

순천 여행기 - #8

바다지기 2017. 10. 27. 23:20 댓글확인


조계산 선암사라 써 놓은 현판이 보인다. 옆에서 보면 기둥이 하나로 보여 일주문이라 칭하는 이 문은 사찰의 경계를 나타낸다. 뒤에는 고청량산해천사라는 현판이 있는데, 옛 조계산과 이 절의 이름을 말하는 것 같다.

 


굳게 닫힌 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가람을 이루는 나무의 느낌이 근처의 가람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느낌이라 사진에 담아봤는데, 돌아와서 조사해보니 1997년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제법 많은 절과 궐을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고축을 보는 안목이 한참은 멀었다.

   


많은 비구가 화합하여 머무는 것을 승가라고 하는데, 이를 마치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룬 것과 같다 하여 수풀 림자를 써서 표현한다. 그 중에서도 선원, 강원, 율원을 모두 갖춘 사찰을 총림이라 하는데 이곳은 우리나라에 있는 6개의 총림 중 한 곳이자, 태고종의 유일한 총림이다. 그래서인지, 절이라기보단 마치 마을과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대웅전에선 예배가 한창이기에 자리를 비켜 지장전으로 왔다. 합동수계가 있는지라 절은 어딜 가던 북적이는데, 이 곳 지장전은 어째 적막이 흐른다. 그저 사진이나 찍으러 온 나로서는 환영할 일이지 싶다 싶어 카메라를 들고 가까이 가니 안에서 조용히 예배를 올리는 분이 보인다. 별 수 없이 처마 밑에서 한 장 담는 걸로 만족하기로 한다.

 


지장전을 지나 절 뒤편으로 가는데 갑자기 스님들이 분주해진다. 역시, 절이라기 보단 마을 같다.

 


호남제일선원이라 적은 문을 지나 응진당을 향한다. 안에는 삼존불과 16나한을 모시고 있는데, 앞뜰에서부터 그 모습이 보인다. 왼쪽도, 오른쪽도 각각 달마전과 진영당이 있어 마치 불상에 둘러싸인 느낌마저 든다. 그럼에도 위압감보단 친근감이 먼저 앞서는 것이 새삼 불교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기독교의 성상은 모델 때문인지 어쩔 수 없이 낯선 이미지인데, 왠지 불상들은 동네에 한 분 쯤 있는 살찌고 인상 좋은 아저씨를 보는 느낌이다.

 



절 뒤의 샛길로 나오니 큰 비석이 서있다. 비를 맞아 축축한 숲에서 풍기는 느낌과 어우러져 오묘한 매력이 있다. 그저 내가 안내문을 못 보고 지나친 걸지도 모르겠지만, 별 안내도 없던 비석인데 조형이나 위용이 여느 문화재 못지않다.

 


멀리 예쁜 암자가 보여서 가까이 가서 찍어보니 해우소다. 송광사 화장실은 무슨 굉장히 오묘하게 안 어울리게 만들어 놨던데, 말 그대로 이곳의 화장실은 산 속 암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보통 해우소에 저렇게 멋진 기와를 올리던가 싶기도 하다. 벽만 조금 더 세련됐으면 들어앉아 살아도 될 것 같은 모습이다.

 



산 속에 있는 스님들의 마을에서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문득 시계를 보니 슬슬 하산해야 할 시간이라 계곡을 따라 절을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어느새 일주문을 등지고 있다. 올라왔던 길을 돌아가며, 승선교와 계곡을 지나 주차장으로 향한다.

 


산을 내려가던 중 나무에서 이상한 위화감이 들어 자세히 보니 한 번 크게 꺾인 나무가 죽지 않고 꿋꿋이 자라나고 있었다. 이런걸 보고 교훈을 얻을 정도로 감성적이진 않다만, 흔히 보기 힘든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게 된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점심은 먹고 올라가기 위해 시내로 돌아왔다. 하필이면 시내는 행사로 인해 곳곳이 도로 통제 중이라 주차하는 공간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가뜩이나 아침 일찍 일어나 먹은 게 감자칩 뿐이라 허기는 심하고, 막힌 길로 신경까지 쓰이니 꽤나 짜증이 난다. 난관 끝에 모정쌈밥에 도착했지만, 주말이라 먹어보고 싶었던 고등어쌈밥은 안 되고 제육만 된다고 한다. 역시 일은 한 번 꼬이면 줄줄이 꼬이게 됨을 느끼며 아쉬운 대로 제육쌈밥이라도 먹기로 한다. 어쩔 수 없이 먹은 녀석 치곤 시장이 반찬인지 거의 흡수를 해버렸다만, 그래도 목표한 것을 못 먹은 아쉬움은 제법 진하게 남는다.

  


순천역에서 할머님께 드릴 선물을 사고 서울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싣는다. 끝이 아쉬웠던 짧은 여행이지만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하며 접어둔다. 올라가는 길에 카메라를 켜 보는데, 그 안에 가득 쌓인 사진과 사진 속 풍경 안에 담긴 추억의 무게가 이틀 치고는 제법 무겁게 느껴진다.

  

2017.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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