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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당분을 보급하고 농가 근처를 지나 낙안읍성에 도착했다. 널찍한 평야에 서있는 읍성의 모습이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생각하며 입장권을 끊고 성루에 올라본다.

 


생각보다 읍성 안은 넓었는데,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 성을 따라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초가지붕 가득한 마을에 방송용 스피커가 하나 있는데, 이젠 이런 모습도 보기 힘들어서 그런지 별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을 곳곳에는 감나무가 잔뜩 심어져 있다. 본래 딸 생각이 없으셨던 건지 나무마다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든 새소리가 들려온다. 개중에는 사람이 오건 말건 감 파먹는데 열중인 녀석들도 있었는데, 사진기만 들면 귀신같이 눈치 채고 도망가서 제대로 담은 녀석은 없다. 어차피 가지고 다니는 렌즈로 멀쩡한 새 사진은 무리니 별로 상관은 없으려나?

 


끝부터 서서히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를 보니 가을이 물씬 다가왔음을 느낀다. 위쪽은 제법 낙엽이 물들기 시작했는데, 여긴 이제 시작인걸 보니 아랫동네가 확실히 따스하긴 한 모양이다. 2주 쯤 지나서 오면 완연한 가을 풍경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큰 돈 안 드는데, 가을 낙엽 보러 한 번 더 와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성을 따라 걷는 중에는 제법 가파른 계단도 만나게 된다. 잠깐이지만 울창한 대숲 근처를 지나게 되는데 멀리서 울던 뻐꾸기가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지 울음을 멈춘다. 여기는 제법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일 탠데 어지간히도 경계한다.

 


계단을 오르니 낙안읍성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초가지붕으로 만들어진 마을 또한 배경과 어우러져 마치 사극에 나오던 옛 마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푸른 가을 하늘과, 적당히 물든 마을, 그리고 초가지붕을 담고 싶어지지만, 날이 흐려서 사진은 아쉽게 됐다.

 


서쪽에는 원래 없던 것인지, 아니면 복원 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쉽게도 길이 잠시 끊겨있다. 조금 돌아서 가면 되긴 하지만, 이 참에 마을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자료전시관을 거쳐 동헌으로 가는 길에 큰 북이 있는 건물이 보인다. 동헌의 입구 쯤 되는 걸까? 현판을 보니 낙민루라 적혀있는데, 돌아와서 알아보니 꽤나 이름이 난 누각이라 한다. 그 이름에 담긴 깊은 뜻은 알 길이 없지만, 즐거울 낙에 백성 민을 써 놓은 현판에서 당시에 어떤 정신을 담아 백성들을 다스리고자 했는지 조금은 전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 행정이 이루어지던 동헌에는 사또와 아전을 표현한 인형들이 있다. 사진을 찍은 위치 바로 옆에는 죄인으로 보이는 인형이 묶여 있는데, 동헌에 오는 사람마다 한 번씩 추궁을 하고 가니 가뜩이나 억울해 보이는 표정이 불쌍해 보일 지경이다. 내가 사진을 찍는 중에만 해도 한 네 명은 네 죄를 알렸다!’ 하고 지나갔으니 말이다.

 


동헌을 나와 낙풍루 근처로 가는데 번데기를 파는 모습이 보여 바로 사버렸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번데기인지 모르겠다. 옛날엔 휴게소에서 봐도 잘 안 사먹었는데, 요즘은 보기 힘들어져서 그런지 보이는 족족 한 컵씩 사서 먹는다. 게다가 동헌 앞뜰에 있던 굴렁쇠도 굴리고 그네도 타느라 허기가 졌던 것도 크게 한 몫 했다. 고소하고 짭짜름한 번데기에 제법 배가 불러서 기분은 좋다만 한 컵에 2천원이 된 건 조금 아쉬운 점이다. 전에는 싼 맛에 사먹는 간식이었는데...

 


마을 한 쪽에는 이곳의 수령으로 있었던 임경업 장군과 관련된 비각이 있다. 요즘 한참 상영 중인 남한산성과 관련된 호란 시절의 유명한 장군이기도 한데, 이런 곳에서 관련된 유적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다만 누각까지 세워져 잘 보존된 비석 치고는 조형미가 여러모로 아쉽다. 경주에서 봤던 신라시대의 조각들보다도 더 투박한 느낌이다.

 



낚시를 하는 인형이 있는 물가를 지나니 연꽃이 가득한 못이 있다. 저 앞으로 처음에 들어왔던 쌍청루가 보이지만 벌써 나가기는 조금 아쉽기에 한 곳만 더 둘러보기로 한다. 입장할 때 받은 지도를 보니 근처에 옥사가 있다는데 그곳이나 가 봐야겠다.

 



옥사 안에는 형구를 채운 죄수들의 모습을 묘사한 인형들이 칸마다 들어있는데, 그 중 끝 칸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놨다. 그냥 앉아있기엔 제법 바람도 잘 들고, 햇볕도 따스해서 조금 더 있고 싶은 장소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긴, 지금이야 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으니 당연한 걸까? 옥사 안으로 비치는 햇살의 따뜻한 색감이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만들어 낸다. 옥사를 나오니 앞뜰에 곤장을 때릴 때 쓰는 몽둥이와 주리를 틀 때 쓰는 막대기 등 여러 도구가 있다. 그 중에 곤장 때릴 때 쓰는 몽둥이가 생각보다 훨씬 묵직해서 놀랐다. 괜히 장독이니, 맞다 죽었다느니 하는 얘기가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남문을 나와 성벽 밖으로 걸어본다. 잘 깔린 잔디 위를 걷는 느낌이 마을 안을 걸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안겨준다.

 


성벽 위로는 방금 우리처럼 가을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지나간다. 하늘은 조금 어둡지만, 그래도 걷기 좋은 날임은 확실하다.

 



더 가면 다시 동문이고 주차장하고도 멀어지기에 여기를 반환점 삼아 다시 남문으로 돌아간다. Y가 에딘버러에 있어서 가끔 성 사진을 보내주곤 하는데, 웅장한 서양의 성도 좋지만 이런 읍성 또한 전혀 다른 방향의 매력을 우리에게 어필하는 것 같다. 훨씬 더 정감 가는, 그리고 누가 올라가 있어도 어울리는, 마치 시골길 같은 성의 모습이 참 좋다.

 


이제 왔던 길을 돌아 나가본다. 점점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이 조금은 불안하게 느껴진다. 따로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었다만, 당장 비가 쏟아져도 별로 이상할 건 없어 보인다.

 

2017.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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