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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길었던 연휴를 집에서만 보냈더니 몸은 편하다만 미련이 남는. 본래 계획대로라면 8월에 길게 유럽을 다녀왔어야 했을 터이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짧게 일본만 다녀와서 그런가? 아니면 일본에 다녀 온지도 벌써 두 달 정도 됐으니 또 역마살이 낀 걸까? 짧게 주말 동안 다녀올 여행지를 찾아보다가 순천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을 위해 쌓은 돈을 조금 허물고, 계획을 짜고, 기차표, 숙소 예약을 하며 즐거운 한 주를 보냈다.

 

드디어 찾아온 여행. 집 근처에 광명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어 그것을 타려고 집에서 나섰는데, BIS 오류로 이미 지나간 버스가 찍혀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없어 결국 택시를 타고 가는데, 광명 가는 길을 모르셔서 이래저래 많이도 헤맸다. 인천에서 광명을 가는데 서울대학교 정문을 봤으니 말이다. 택시 기사 분께서 많이 미안해하시며 2만원만 받겠다고 하시기에, 고속도로 통행료는 내겠다고 말씀드리며 조금 더 얹어 드리고 역을 향한다. 그래도 꽤 일찍 나왔는지 그렇게 헤맸어도 우유에 빵 하나 먹을 시간은 남았다. 적당히 주린 배를 달래고, 순천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승강장에 선다.


 

도회지에서 조금은 먼 곳을 지나는 고속선이지만, 그럼에도 대전 즈음을 기점으로 창밖의 풍경이 크게 바뀐다. 높은 하늘, 흩날리는 구름, 금색 벌판, 꽤나 혹독했던 여름 덕분인지, 벌써 10월인데도 가을이 갑자기 찾아온 것만 같다.



잠깐 눈을 붙이고 자고 싶었지만, 여러 동호회에서 같은 칸을 쓰는 모양이다. 편하게 잘 환경은 아닌 것 같아 가져온 책을 꺼내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이 책은 읽히는 것도, 기억에 남는 것도 여태까지 본 하루키의 소설과 다르다. 줄줄이 책을 넘기며 시간을 보내던 중, 창밖으로 구례를 통과하는 것을 확인하고 책장을 덮는다.

 


순천에 도착했다. 위 보다는 조금 더 따뜻한 온도, 하늘은 조금 더 흐린 것 같다. 지금 봐서는 제법 노을이 기대되는 하늘이다. 먼저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던 B와 합류하고 근처의 쏘카존에서 차를 빌리러 가본다.

 


주차비라도 아끼고자 레이를 빌렸는데, 시동을 걸자마자 계기판에 저압 타이어 경고등이 뜬다. 깔끔하게 깔린 국도로만 갈 것 같지는 않아 업체에 전화하니 다른 곳에서 차량을 교체해주겠다고 한다. 어차피 일정은 조금 꼬였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근처의 카페에 들러 커피라도 한 잔 해야겠다 싶어 아메리카노 한 잔과 베이글을 주문한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다. 1시간 정도를 버리고 레이대신 같은 가격에 투싼을 얻었다. 아무래도 승차감이나, 차가 나가는 느낌이나, 이쪽이 더 낫기에 환영할 일이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22번 국도를 타고 달리던 중, 옆으로 트인 황금색 물결에 마음이 쓰여 잠시 차를 멈춘다.

 



조금씩 두터워지는 구름이 조금은 신경 쓰이지만, 그래도 눈부실 정도로 빛나는 벼의 모습은 다른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계속해서 출근, 퇴근만을 반복하며 회색빛 풍경만 보다 보니 왠지 마음까지 삭막해지는 느낌이었는데, 가슴 한 구석부터 점점 색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2017.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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