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집중력

 

책을 멀리 하게 되는 시기가 있다.

딱히 이유도 없이, 이상할 정도로 책이 손에 안 잡히고 집에 오고는 웹서핑만 하는 그런 시기.

 

그런 일상을 타파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책이 많은 공간에 가는 것이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이 될 수도 있고, 웹서핑 할 때 주소를 온라인 서점으로 바꾸기만 해도 제법 괜찮은 시도다.

아니면 오랜만에 책이 가득 쌓인 서점에 가는 것도 제법 좋은 변화를 준다.

 

이번에는 서점을 찾아가 봤는데, 아쉽게도 계기는 썩 유쾌하지 않다.

최근 할머니가 우울증, 혹은 치매 초기 증상을 보여서 불안한 마음에

집에서 소일거리라도 드리고 싶어서 초등학교 수학 문제집을 사러 간 게 오랜만의 서점 방문 사유니 말이다.

 

문제집을 드리며 집에서 TV만 보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하는데 문득 나는 괜찮은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TV보다 더 편중된 각종 SNS, 유튜브에 파묻혀 있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즘, 정말 우연히도 손에 쥔 책이 바로 이 '도둑맞은 집중력'이다.

난 책을 고를 때 줄거리를 잘 안 보는 편인지라, 관심 있던 화제에 맞는 책을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건 여러모로 귀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평소보다 훨씬 재미있게... 그리고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마치 내 생활을 꿰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가고 싶었던 맛집에 가서도, 산책을 다니면서도, 심지어 멀리 여행을 떠나서도 늘 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러한 행동에는 별다른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습관. 그냥 그렇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그런 느낌이었다.

 

요즘 꽤나 흔해진 비만,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을 두고 지난 수백만 년 동안의 삶과 최근 백여 년의 삶이 너무 달라진 결과라고 말하곤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과연 이게 식생활에만 통용되는 말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

 

어쩌면 우리 정서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그래도 섭취하는 영양분이 -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 세 종류뿐인 식사에 비해 훨씬 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책의 제목은 집중력의 상실에 초점을 맞춘 것 같지만, 사실 이 책은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수많은 착각들에 대해 도전적으로 비판한다.

 

생각보다 많은 문제와 개념들이 현대에 와서 불거진 문제들이고

우리는 어느덧 그러한 문제들의 원인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해결책에 급급해져 중요한 것을 놓쳐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과연 예전부터 있었는데 우리가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현대에 와서 눈에 두드러지게 된 것일까.

만약 후자라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책을 읽으며 우리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원래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SNS와 그다지 친하진 않았지만, 이 책을 계기로 조금 더 이들과 멀어진 삶을 살고 있다.

그냥 정리용이야~ 라며 하던 몇 안 되는 SNS도 생각해 보면 실시간으로 날아오는 반응에 꽤나 신경을 쓰지 않았던가?

 

여행을 가서 멋진 풍경을 보고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감동을 느꼈던가 아니면 핸드폰으로,

각종 필터를 넣어가며 예쁘게 찍은 뒤 남들의 부러워하는 '느낌의' 하트와 댓글을 기다리며 누군가의 반응으로 만족하길 기다렸던가.

 

가만 생각해 보면 그러한 것들은 나에게 어떠한 양분도 되지 않는데 말이다.

 

이 책을 접한 뒤, 내 삶을 조금 더 느려지고, 고립되고, 둔해졌다.

하지만 조금 더 사려 깊고, 자유롭고, 편해졌다.

 

2023. 10. 29

 

http://aladin.kr/p/QzyoQ

도둑맞은 집중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