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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읽은 책입니다. 이상하리만큼 요즘 책이 손에 안 잡히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반 억지로 손에 들고 읽은 책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였습니다만, 사실 이 책마저도 끝까지 읽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과정에서 눈에 들어왔던 몇 가지 문장이 있었고, 그 대부분이 '에피쿠로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었죠.

 

잘 쓰지 않아 박혀 있던 아이패드의 용도를 고민하던 중, 전자책을 한 번 읽어볼까?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시작된 전자책 생활의 첫 책이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이었던 건, 아마 이런 이유였을 겁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바라는 건 즐거움뿐이다.

 

제대로 에피쿠로스를 접하기 전, 그와 그의 학파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는 '쾌락주의'라는 명칭에서 갖게 된 선입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거기에 따라오던 단어들은, 왜인지 모르게 '탐닉', '욕망', '본능' 과 같은 단어들이었죠.

 

하지만 그가 말하는 쾌락은, 말 그대로 즐거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고통의 부재'가 곧 쾌락이었던 것 같네요.

이것은 생각보다 큰 차이였습니다. 가장 직관적인 예시는 배고픔에 대한 예시였죠.

 

우리는 배가 부른 것을 쾌락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배고프지 않은 것이 쾌락이라는 것.

고통이 없다는 것 자체가 쾌감을 느끼는 상태라는 것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다 말하는 요즘 곱씹을 만한 문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소유, 더 나아가 갖고자 하는 마음이 욕구에 대해 에피쿠로스는 분류를 제시합니다.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것, 자연스럽지만 불필요한 것, 부자연스럽고 불필요한 것.

 

그리고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여, 철학자로서 인간의 고통에 치료법을 제시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상 얼마 되지 않으며 따라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더 맛있는 음식, 넓은 집, 좋은 옷.

이제는 의식주를 넘어 차, 가방, 시계... 가진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진 요즘입니다.

하지만 진정 필수적인 것은, 우리가 사람이라는 형태에서 살아가는 이상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저기서 핸드폰과 차, 노트북 정도일까요? 일은 해야 되니까요.

어쩌면 갖고자 욕망하는 것들 중, 나를 행복하게 하는 정도도 위의 순서대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반대로 못 가져서 나를 괴롭게 하는 순위는 위의 역순이 아니었나 싶네요.

 

물질의 획득을 통해 이르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

정말 어렵던 시절부터, 조금은 여유가 생긴 지금. 돌이켜 보면 언제나 당장은 행복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없던 행복이 생기니 있던 행복이 사라진 적도 있습니다.

반대로 있던 고통이 사라지니, 없던 고통이 생기기도 했고요.

 


 

신적 존재의 핵심적 특성 중 하나는 행복이다.

 

에피쿠로스의 무신론은 생각보다 훨씬, 요즘 느낌입니다.

근래의 무신론에 비하면 오히려 유신론자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만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에피쿠로스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불행한 신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그의 세계에서 신은 행복해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삼라만상의 온갖 대소사에 관여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일이 많은 신이 행복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야근만 해도 불행한데, 저런 일을 해내는 신이 과연 행복할까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히 불행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신이 있다면, 우리가 뭘 하던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경외도, 두려움도, 숭배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니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악신론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악신이 존재한다는 것보단, 무심한 신이 존재하는 것이 저에겐 조금 더 마음 편한 일인 것 같네요.

 


 

오랜만에 읽은 책이라 그런가요.

전자책으로 50페이지 정도 되는 길지 않은 책이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고 난 뒤에 생각이 많아진 것도, 쓰고 싶은 말이 이렇게 많은 것도 오랜만이네요.

 

에피쿠로스의 많은 이야기 중에, 가장 마음을 울린 부분은 소유와 신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책은 이쪽으로 이어나가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

 

당장 떠오르는 저자로 법정, 리처드 도킨스, 데이비드 흄.

역시 저변이 좁아 그냥 누구든 떠올릴 만한 분들만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안 읽은 책이 많으니, 한 번 이 세 분의 저서를 뒤적여봐야겠습니다.

 

참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2022. 1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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