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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머리에 떨어진 것 같아 일어났는데, 하늘을 보니 어째서인지 조금 더 맑아진 느낌입니다.

달고 신 음료도 한 잔 마신 덕에 잠도 깼으니 이제 좀 걸어볼 시간이네요.

 

아직 오전이니, 잠깐 짬을 내 토끼비리를 다녀와야겠습니다.

 

 

 

건너편으로 가는 길은 옛 문경선의 철교를 이용했네요.

난간 곳곳에 문구가 붙어 있길래, 설마 여기도했지만 다행히 난간에 기대지 말라는 문구 들입니다.

 

사실은 난간에 붙은 문구면 기대지 마시오, 넘지 마시오 인 것이 기본인데...

워낙 세상이 흉흉하니 요즘은 저런 것만 봐도 나쁜 생각부터 먼저 드네요.

 

 

오미자터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고모산성의 입구인 진남문이 보입니다.

 

 

그리고 제가 갈 길은 이쪽이죠.

옆으로 빠지는 좁은 길이 우리나라의 명승인 '토끼비리'로 가는 길입니다.

 

서울과 부산을 잇던 옛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한 구간이라고 하는데, 이름이 특이해서 유래를 찾아보게 되네요.

 

고려의 태조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할 때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알려줬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 '토천'에서 토끼.

비리는 벼루의 사투리로, 문방사우의 벼루인 줄 알았더니 낭떠러지라는 뜻이더군요.

 

그럼들짐승이나 갈 법한 낭떠러지 옆 길이라는 뜻인데 느낌이 쌔 합니다.

 

 

유래에 비해 길의 시작이 참으로 평온합니다. 마치 한적한 읍성의 성벽을 따라 걷는 느낌이네요.

개인적으로 이런 길을 참 좋아하는지라 계속 걷고 싶은데, 이미 저 멀리 끝이 보여 아쉽습니다.

 

 

 

그리고 본모습을 드러내는 토끼비리.

지금이야 위험한 구간은 나무 데크와 로프로 어느 정도 다닐 수 있게 잘해놨습니다.

 

한 편으로는 이 길이 조선의 가장 중요한 간선 중 하나였던 영남대로의 일부라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네요.

달구지는커녕 가마꾼도 못 지나가게 생긴 길이니까요.

 

 

경상도에서 서울로 가는 큰길은 세 가지가 있는데, 각각 추풍령, 조령, 죽령을 넘어야 합니다.

 

예로부터 유림이 많은 경상도에서 과거를 보고자 서울을 갈 때면 저 셋 중 하나를 넘어야 했는데,

추풍낙엽이 떠오르는 추풍령, 죽죽 떨어질 것 같은 죽령보다 새처럼 비상한다는 조령이 제일 인기가 많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지역의 이름은 문경. 경사를 듣는다는 뜻풀이가 가능한 지명이기도 하고요.

 

, 말장난이겠거니 싶지만 요즘도 큰 시험이면 각종 징크스에 민감한 우리들 모습을 떠올리면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어쨌든 이러한 사유로 조령으로 향하는 이 토끼비리에 관해 시를 쓴 선비들이 많다고 합니다.

 

여기에도 그중 한 수가 적혀 있는데,

근처의 산성과 이 벼랑길을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관문이자 험로인 함곡관과 촉도에 비유한 것이 재밌습니다.

 

 

 

그런데 이 길은 어디까지 가는 걸까뭐가 나오긴 하는 건가 싶은 마음에 계속 걷던 즘 이정표가 나왔습니다.

토끼비리를 찾아보면 뭔가 탁 트인 곳에서 진남교반을 찍은 사진이 나오곤 했는데, 아무래도 저 병풍바위인 모양이네요.

 

150m 정도면,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저 바위는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여기가 사람이 깎은 길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네요.

 

예전에 구둔 쪽의 명승인 구질현도 이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요즘 사람 눈으로 보면 등산로만도 못한 길이 가장 중요한 길 중 하나였다고 하니 믿기지 않을 뿐입니다.

 

교과서에서 나왔던, 조선 시대에는 육로보다 수운을 중시했다는 말이 실감 나는 모습이네요.

 

 

길에서 옆으로 빠져나와 작은 능선을 따라 조금 걷고 나니 탁 트인 공간이 나옵니다. 여기가 병풍바위 전망대인 모양이네요.

 

산은 잘 모르지만, 전망대의 안내를 보니 아마 저 멀리 보이는 고산이 문경의 영산인 주흘산인 모양입니다.

탁 트인 풍경도 봤고, 토끼비리도 이 뒤로 넘어가면 돌아가기가 힘들어 보이니 이만 고모산성으로 돌아가 봐야겠네요.

 

2023.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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