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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뒤로하고 고속도로 밑을 따라 한 10분쯤 걸어가니 기타산도 라는 표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메이지 시대에 대해 갖는 여러 관점은 차치하고, 기타산도 토리이를 지나 하라주쿠까지 가는 이 길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하코네에서 나무가 우거진 길을 유독 좋아하셨던 기억이라, 코스를 바꿔가며 들른 곳인데 좋아하시는 것 같아 뿌듯하네요.

확실히 도심 한 가운데에서 이 정도의 숲길을 만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멋드러진 숲인 이 근처를 조림할 때 일본 각지에서 나무를 가져왔는데, 여기에는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이 포함됩니다.

이 숲 어딘가에도 멀리 조선 땅에서 뽑혀 실려온 나무가 있다는 얘기겠죠.

 

굳이 신궁으로 갈 이유는 없으니, 적당히 하라주쿠 방향으로 빠져나갑니다.

 

 

 

생각해 보니 신주쿠교엔마에에서 하라주쿠까지 걸어왔더군요.

저도 저대로 지쳤지만, 할머니 컨디션도 있으니 출구 앞의 카페에서 잠깐 쉬어 가기로 합니다.

 

몽블랑은 안 드신다더니, 맨 위에가 밤이라고 하니 관심을 보이시네요.

결국 밤만 골라 드시고 나머지는 제 몫입니다. 지금 보니 옛날에 할아버지들이 간식으로 드시던 꿀에 절인 밤이랑 별 다를 것도 없네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 원래 가기로 했던 아사쿠사에 가보기로 합니다.

메이지진구마에에서 오모테산도로, 다시 거기서 긴자선을 타고 종점인 아사쿠사까지.

 

평일 대낮이라 별로 사람이 없겠거니 싶어서 선택한 행선지인데, 어째 열차 안이 꽤나 북적입니다.

 

 

사람들로 가득했던 긴자선 안에서부터 조금은 불안했는데, 센소지 근처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네요.

말 그대로 사람에 질려버릴 정도라 급히 길가로 나왔습니다.

 

관광이 다시 많이 회복됐다더니, 평일 대낮에 이 정도면 주말에는 발 디딜 틈도 없겠네요.

 

 

히가시혼간지를 거쳐 우에노까지 천천히 걸어 봅니다.

 

길가에 자잘한 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몇 있어서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그냥 일본의 길거리를 걷는 자체가 꽤나 재미가 있으신 것 같네요.

 

연세가 있으신 편이지만, 지금도 매일 아침마다 운동을 하셔서 그런지 가끔은 저보다 잘 걸으시는 것 같습니다.

 

 

 

우에노 공원의 입구에는 벚꽃이 벌써 만개했네요.

이 공원에도 볼거리가 참 많고, 뒤편에는 동물원도 있지만 오늘은 바로 시노바즈노이케로 가봅니다.

 

여행의 마지막은 고즈넉하게 앉아서 마무리짓고 싶었거든요.

 

 

 

유독 어린 아이들이 많았던 시노바즈노이케.

증손주 뻘 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리 좋으신지 앉아 계시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네요.

 

바람도 좋고, 어찌됐던 즐거워하시니 지금이 참 좋기만 합니다.

 

 

비행기는 오후 여덟시라 시간이 한참 남긴 했지만, 마땅히 앉을 곳도 없으니 차라리 라운지에 일찍 가는 게 낫겠지 싶네요.

다시 요코하마에 들러 짐을 꺼내고, 처음 도쿄에 왔을 때 탔던 케이큐를 타고 하네다 공항으로 향합니다.

 

 

라운지에서 랩탑으로 미스터트롯을 틀어 드리고, 안의 음식으로 허기를 조금 달래봅니다.

시간이 여유로우니 면세점 들르기도 편하긴 하네요.

 

여행을 다니는 내내 점심도 거르고, 어르신 모시고 다니다 보니 술도 잘 안 마셔서 환전한 돈이 꽤나 남았습니다.

이것저것 먹을거나 잔뜩 사서 돌아가야겠네요. 휴가 기간 중 백업한 친구에게는 싼 위스키라도 한 병 사줘야겠고요.

 

 

라운지에 앉아서 사진 정리하던 것도 지루할 때쯤, 서울로 가는 탑승객은 게이트로 오라는 안내가 들립니다.

비행기에 앉아 서울로 그어진 항로를 보니 이제 진짜 여행의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납니다.

 

코로나로 차일피일 미루다, 하마터면 못 이룰 뻔한 제 작은 목표였는데 그래도 이렇게 별 탈 없이 다녀왔네요.

앞으로 할머니를 모시고 이렇게 멀리, 오래 다녀오기는 쉽지 않겠죠.

 

저뿐 아니라, 할머니에게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람입니다.

여러모로 뜻깊고 보람찬 여행이었네요.

 

2023. 0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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