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절 안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절 앞을 흐르는 신평천과 그와 어우러진 전각의 모습이었다. 근처의 나무도 서서히 색을 띄기 시작하고, 변해가는 묘한 빛의 나뭇잎은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 한층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진을 찍으러 꽤 많은 곳을, 다양한 시간에 다녀봤지만 오늘의 햇빛은 흔치 않은 매력이 있다. 세상의 색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어두운 곳에는 활기를, 밝은 곳에는 절제를 주는 그런 빛이다. 이런 흔치 않은 빛을 온전히 담을 수 없는 부족한 실력이 아쉬울 뿐이다.

 


절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화루를 건너간다. 단청에서 무언가 번쩍이기에 봤더니 물에서 비친 햇빛이 어른거리고 있다. 멈춰있는 건물에 움직이는 빛이 묘한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절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대웅보전에 도착했다. 아쉽게도 절 한쪽이 공사로 분주해서 기대했던 모습하고는 거리가 있다. 최대한 본래의 송광사가 갖고 있었을 모습을 담아보기 위해 대웅보전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지만 커다란 크레인은 어딜 가던 사진 한 쪽에서 존재감을 뽐낸다. 아쉽지만, 이것 또한 지금의 송광사가 갖는 순간이니 미련을 버리고 물러난다.

 


관음전 뒤편에 있는 감로탑에 가기 전에 사진을 찍는 내내 신경 쓰였던 나무를 담아본다. 무릇 나무라면 옆보다는 위를 향하기 마련인데 이 녀석은 마치 부채마냥 가지를 넓게도 펼쳐 놓았다. 보기보다 수령이 제법 있는 나무인지, 아니면 수종이 이러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잎은 또 듬성듬성 나 있어서 의외로 그늘은 변변찮다. 그늘도 없고, 경외심을 부를 정도로 두껍지도, 높지도 않지만 그래도 사람의 눈높이 즘에서 즐길 수 있는 나무라고 한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나름의 매력이 될까?

 


감로탑을 향해 올라가는 계단 옆으로 덩굴이 담을 덮고 있다. 오래된 담과 기와에는 멋과 여유가 쌓이기 마련인데, 이러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는 덩굴이 으뜸이다.

 


감로탑은 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절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경내를 거닐 때도 느꼈지만, 전각의 수나 크기가 예사 절과는 급을 달리한다. 그러고 보니 오면서 탑을 한 기도 못 봤는데, 절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송광사는 처음 세워졌을 때의 이름이 아니다. 그 기원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우리에게 더 익숙한 이름은 지눌선사가 정혜결사를 옮겨오며 개칭한 수선사일 것이다. 이 내용은 국사책에서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감로탑이 바로 지눌선사의 감로탑이다. 세월이 가득 묻어있는 탑을 근처에 두고 앉아 조금 쉬며 절을 내려다본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송광사의 모습을 보고 있다보니 왜 이곳에 감로탑을 지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미 한 번 언급했지만 역시 기와에는 덩굴이 으뜸이다. 굳이 버금가는 것을 찾자면 곱게 낀 이끼 정도 되려나?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관음전 처마 밑에서 사진을 담아본다. 오래된 나무의 색감과 위엄이 있으면서도 해학적인 모습의 조각의 조합이 기분 좋게 다가온다.

 


들어갈 때와는 조금 다른 길로 절을 내려가는데 도라지꽃 한 송이가 눈에 띈다. 도라지꽃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인데, 아직 피지 않은 꽃에는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잠깐 생각해 봤지만 별 의미 없는 일이라 느끼고 사진이나 찍기로 한다. 사실 도라지 하면 사랑보다는 무침이 먼저 떠오르니 말이다.

 




절 한 쪽에는 우화각으로 이어진 문이 아닌 곳으로 나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있다. 징검다리 위에 서서 고개를 돌려보니 송광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삼청교와 우화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햇볕이 옆에서 강하게 내리쬐어 사진이 조금 뿌옇게 나왔지만, 그 덕에 조금은 다른 느낌의 전각을 담아낼 수 있었으니 그저 만족스러울 뿐이다. 다만 징검다리 위인지라 오랫동안 있을 수 없는 점이 너무나 아쉽다. 자고로 이런 풍경은 사진도 좋지만 역시 눈으로, 최대한 긴 시간동안 담아주는 것이 최고니 말이다.

  


왔던 길을 돌아 내려가는 길, 올라가는 길은 꽤 오래 걸렸건만 내려가는 길은 순식간이다. 어느덧 편백나무 숲이 보이기 시작한다.



청량각을 지나면 저 멀리 매표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젠 다 그러려니 할 줄 알았는데 매표소를 보니 괜히 인상이 찌푸려진다. 아쉽다. 별 거 아닌 일이건만, 깨끗한 종이에 먹이 한 방울 튄 것 마냥 기분에 거슬리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나의 송광사는 이 청량각이 입구였고, 출구였던 모양이다. 빠른 걸음으로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으로 향한다. 어차피 여기부턴 내가 살던 곳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2017.10.14.


'Travel essay, 2017 > 5. Sunche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Suncheon - #6.  (0) 2017.10.21
Suncheon - #5.  (0) 2017.10.19
Suncheon - #4.  (0) 2017.10.18
Suncheon - #3.  (0) 2017.10.17
Suncheon - #2.  (0) 2017.10.17
Suncheon - #1.  (0) 2017.10.16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