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번 인문 건축 기행에 이어 연속으로 유현준 교수님의 책을 다루게 되네요.
책을 반납하고 다음 책을 고를 때,
예전에 책을 꺼냈던 곳 바로 옆의 도톰하고 흑백으로 겉표지가 된 이 책을 집는 일은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닐 겁니다.
사실 동네 도서관이 그리 큰 편도 아니긴 하고요.
지난번에 읽은 인문 건축 기행이 세계 각지에서 저자에게 영감을 준 건축물을 소개하는 책이었다면,
이번 '공간 인간'은 보다 저자가 갖고 있는 생각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벽돌과 돌을 포함한 재료의 차이, 수직과 수평의 차이, 높이의 차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
그간 건축사에 있었던 수많은 변화에서 그것들이 인류의 문화에 미친 영향을,
반대로 변화한 인류가 건축에 미친 영향을 몇 가지 예를 들며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가상공간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도 일종의 공간의 변화로 받아들인다는 점이었네요.
당연히 건물 얘기만 주야장천 나올 거라 생각했던 저인지라,
후반부는 오히려 건축보다는 요즘 유행 중인 AI나 인터넷 관련 서적을 읽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조금 의외였던 점은 직전에 읽었던 인문 건축 기행과 달리, 건축을 핑계로 한 저자가 세상을 읽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다는 점입니다.
저는 당연히 이번 책도 여러 공간을 소개하는 책일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읽는 내내 조금 아쉬웠던 것은, 건축에서 연상되는 부분이 지나치게 넓어지는 경우가 잦았다는 점입니다.
상대적으로 직관적인, 건축에 사용되는 소재, 형태등에서 연상되는 것까지는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정치, 지정학, 경제의 얘기까지는 저자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가치관을 갖지 않는 사람에게는
'뭐 이걸로 이렇게까지 얘기해?' 라고 할 법도 한 내용들도 꽤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책 전반에 걸쳐 수많은 논리의 도약이 발생합니다.
건축이라는 한 카테고리로 이 세상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도약과 과장 없이는 불가할 겁니다.
그것들 없이 가능했다면 지금의 철학과에서는 건축 모형을 만들고 있었겠죠.
특히 교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저자의 특성상 그 내용이 적어도 글을 쓴 시점에는 모두 정확하고, 근거가 있는...
쉽게 말해 도약보다는 담백한 사실에 근거하여 적는 전공서적이길 바라는 시각도 분명히 많았을 겁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근거가 잘못되거나 생각이 다르면 바로 비아냥거리게 되는 거겠죠.
실제로 저자에게 향하는 비난 중 일부는 이러한 점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꽤나 있었던 듯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렇게 비아냥거리며 수필을 읽는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A를 보고 B라고 생각했다'. 라는 내용을 접했을 때, A가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A에서 B를 연상하는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로 하여금 저자의 성향이나 생각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분명 독후감인데도 책 내용보다 책을 둘러싼 세간의 구설수와, 그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적게 됐네요.
솔직히 말해서, 책장에 꽂아 두고 싶은 책은 아니었습니다.
직전에 읽은 '인문 건축 기행'은 바로 사서 책장에 꽂아둔 것에 비하면 박한 평가이긴 하네요.
저와는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각 장 별로 워낙 많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생각이 오가다 보니
읽는 제 입장에서는 각 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미중패권까지 다룰 때쯤이면 너무 멀리 온 느낌도 받았죠.
그러다 보니 다 읽고 나서, '내가 뭘 읽었지?' 라는 느낌도 분명 들었죠.
독후감이 책 내용에서 조금 벗어난 것도 이런 부분이 컸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중에는 분명 흥미를 끄는 의견과 관점도 많았습니다.
AI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과연! 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죠.
흥미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책을 이끄는 건축의 대다수가 중동 그리고 서구권인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는 저와 저자의 견문의 차이도 분명 큰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직접 보고 느껴본 건축은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한국의 건축으로도 이러한 책을 한 번 써주셨으면 하는 소망도 남습니다.
제가 직접 가서 머물렀던 공간에서 저자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면, 아마 이번 책보다는 몇 배 더 흥미로울 것 같네요.
공간 인간
지은이 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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