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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나름의 특색이 있던 온천에서 푹 쉰 뒤, 이른 아침부터 차를 몰고 250나 달려 오타루에 도착했다. 분명 규정 속도는 90 내외인데, 140 정도로 속도를 내도 앞차가 멀어지기만 하니 신기한 일이다. 뭔가 일본인들의 운전에 대한 환상이 깨진 느낌이 든다만, 덕분에 3시간 반 넘게 잡았던 이동 시간이 2시간 남짓 걸렸다. 주차를 하고 증류소에 들어가려는데, 창문으로 무슨 스티커를 주신다. ‘핸들 키퍼’. 운전자의 낙인이다. 요이치까지 와 놓고 시음 한 잔 못하고 돌아가게 생겼다.

 


증류소의 입구는 성문처럼 꾸며져있다. 요이치의 닛카 증류소는 본래 야마자키의 설립자 중 한명인 타케쓰루 마사타카1934년에 세운 대일본과즙을 기원으로 한다. 굳이 과즙회사를 표방한 이유는 산토리의 창립자인 토리 신지로와 마찰 끝에 나온 것이기에 위스키 생산을 숨기려 했다는 얘기가 정설이다. 거의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닛카 증류소. 입장료는 무료고 주차비도 없다. 또한 입장 시 무료로 3잔을 시음할 수 있고, 사과 주스와 차를 제공해준다. 안쪽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위스키 증류소를 직접 와 본 것은 처음인데 사진에서 보던 스코틀랜드의 증류소 풍경이다. 생각해보면 창업주가 그 시대에 글래스고에 유학까지 가고 증류소의 공장장까지 역임했었으니 그 부지의 선정에 얼마나 신경을 썼을지 예상이 간다.

 


열려있는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오크통이 빼곡히 들어차있다. 다만 안에 술은 없는 것 같다. 오크통 특유의 냄새가 매운 창고는 제법 기분 좋지만, 아마 원래는 좀 더 알코올 냄새도 나겠지. 다음엔 한 번 실제 숙성중인 창고에 가보고 싶어진다.

 


드디어 도착한 시음장. 괜히 핸들 키퍼스티커가 붙어있는 가슴팍이 아려온다. 일단 애플 브랜디’, ‘요이치’, ‘타케쓰루를 한 잔 씩 주긴 한다. 입에 머금고, 바로 뱉고 맛있는 닛카의 사과 주스로 입을 행구기를 세 번. 뭔가 짜증난다. 기념품 샵에 가서 요이치 한 병을 집고 위안 받긴 했다만, 다음에 요이치는 대중교통으로 와야겠다. 한 모금만 마시고 남은 잔은 K와 J가 가져가는데, 부럽다 부러워!

 


점심시간이 지났기에 근처의 라멘집에 들어왔다. ‘ラーメンじょぐら라는 이름의 작은 가게였는데 먹은 라멘은 단연코 홋카이도에서 먹은 라멘 중 최고다. 매콤한 붉은 국물에 새우가 어우러져 밥도둑이 따로 없다. 깔끔히 바닥까지 비운 뒤, 행복한 마음으로 샤코탄으로 떠난다.

 


가는 길은 왜인지 꽉 막혀서는 조금은 짜증이 났다. 사실상 홋카이도에서 처음으로 겪은 교통체증이기도 했기에 더 짜증났을지도 모르겠다. 여차저차 도착한 積丹岬’. 저 앞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있기에 사람들을 따라 걸어 들어가 본다.

 


가는 길에는 양쪽으로 해안이 보이는데, 물빛이 꽤나 아름답다. 지형을 보니 이쪽도 화산지형인 것 같다.

 


이름은 모르지만 뻔하다. 아마 촛대바위일거다. 이쪽은 서향이니 일출은 못 보겠지만 시기에 따라 꽤 멋진 일몰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동판에 적혀있는 서울’. 그러고 보니 한국을 떠난 지 만 1주일, 슬슬 청국장에 말아먹는 밥이 그리울 때도 됐건만 아직 이곳에서 먹어야 할 것이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맥주, 삿포로의 오도리 공원에선 맥주 축제가 열리는 중이고, 우리는 오늘 여행 마지막 날 밤을 보내야 한다.

  


아쉽게도 맥주 사진은 없다. 숙소에 두고 나온 카메라를 귀찮다는 이유로 버려두고 그냥 맥주를 마시러 나와 버렸기 때문인데, 글을 쓰는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오도리 공원에서 하던 세계맥주축제, 마침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고 그래서인지 분위기도 너무 좋았기에, 그 분위기에 취해 맥주를 타워로 사서 들이부었다. 안주도 적당한 가격에 제법 맛있게 해줘서 금상첨화였다만, 이 모든 걸 말로만 전해야 된다는 게 너무 슬프다. 끊임없이 맥주와 안주를 사가는 웬 외국인이 신기한지 어쩌다보니 카운터 직원하고 말까지 텄다. 얼마나 마신건지 확실하진 않다만 딱 2500까진 기억이 난다.

  

덕분에 다음날 아침도 늦잠을 자서 허겁지겁 준비하기도 했고, 홋카이도 대학교는 차를 끌고 들어갈 수 없었기에 결국 넘어가서 이렇게 점심 사진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해장의 의미도 있고, 이번 여행 마지막 식사인데 마침 입구에 미슐랭 가이드에 등록된 걸 축하한다고 써져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깔끔한 맛의 兵衛’. 조금은 답답했던 속이 시원하게 풀린다.

 


차를 반납하면서 얼마나 달렸나 보니 8일 동안 2000가까이 달렸다. 하루에 음료 한 개를 공짜로 마시긴 했다만 거의 자원봉사를 한 느낌. 뭐 그래도 나도 이렇게 셋이 모이지 않았다면 홋카이도에서 차를 빌려 다닐 생각은 못 했을 테니 손해 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중간에 일방통행 표지를 못보고 거꾸로 들어갈 뻔 하고, 뒤 범퍼를 주차하면서 살짝 긁는 일도 있었지만 다행히 사고도 없었고 과속도 안 걸렸기에 다니면서 생겼던 여러 일들이 순식간에 좋은 술안주가 된다.

  


잔돈이 남아 마셔본 병 우유. 첫날에도 말했지만 이 동네의 유제품은 사마실 가치가 있다.

 


여행 내내 날씨가 좋은 편이었는데, 마지막 날이 되니 태풍이 도쿄부터 올라온단다. 비행기가 뜨지 않을까 걱정했다만 다행히 하네다로 조금 늦은 시간에 출발했고, 환승도 예상보단 조금 빠듯했지만 아무 문제없이 할 수 있었다. ANA 일본인 직원이 연착으로 환승이 꼬일까봐 한국어로 안내까지 적어줬는데 글씨가 너무 귀여워서 집에다 보관중인 건 공공연한 비밀. 김포로 가는 비행기는 제시간에 떴고 이렇게 8일간의 짧고도 긴 여행이 끝났다.

 

#13. ‘닛카 증류소’, ‘요이치’, ‘죠구라’ ‘샤코탄’, ‘삿포로’, ‘오도리 공원’, ‘나나베’, ‘신치토세 공항’.

 

2016.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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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drazi 2017.03.25 16:30
    바다지기님도 맥주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맥주라면 아주 환장하는데ㅎㅎ
    홋카이도 여행기 잘 봤습니다^^
    블로그 주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blog.naver.com/deutsch0107
    이건 제 블로그 주소인데 제가 찍은 사진중 몇 장을 골라 편집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사진만 있고 설명은 없어서 여행지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르시는 분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오직 저 혼자만을 위한 허전한 공간이지만 바다지기님에게 보답하는 의미로 제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오래 전에 나온 디카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뿐이라 그다지 좋진 않지만
    마음에 드시는 사진이 몇 장이라도 있으면 좋겠네요ㅎㅎ
  • 바다지기 2017.03.25 16:41 신고
    맥주는 사랑이죠, 가는 곳에 증류소나 맥주공장이 있다면 꼭 둘르는 편입니다. Nadrazi님 블로그도 꼭 찾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