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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숙소의 탕에 마지막으로 몸을 담군 뒤, 짐을 로비에 맡기고 다이토쿠지로 출발한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은 조금 여유롭게 보내고 싶었기에, 오늘은 세세한 일정 없이 편안하게 책 한 권, 카메라 하나 들고 움직이기로 한다.

 


어제 다녀온 엔랴쿠지도 일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큰 절이지만, 이 곳 다이토쿠지도 그에 못지 않은 고찰이다. 전국 시대 각지의 다이묘들이 사후의 안녕을 위해 세운 사찰이 많이 존재하며, 개중에는 임진왜란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있다. 맨 처음 막연히 도착했을 때엔, 우리나라의 불국사 정도의 느낌을 상상하며 왔는데 경내 지도를 보니 수많은 건물들 때문에 어디부터 봐야할지 당황스럽다.

 



일단 눈앞에 보이는 건물에 들어갔다. 고즈넉한 겉모습과는 달리 안은 다도를 배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전통 의상을 잘 갖춰 입은 사람들 사이에 어눌한 일본어로 낄 용기는 도저히 없었으므로 어색히 겉만 둘러보고 나온다.

 



왠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힘들어진 바람에 절의 바깥을 맴돌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밥이나 먹고, 갈 곳을 정하자는 마음에 잠깐 절을 빠져 나온다.

 



근처의 동네를 돌던 중 저 멀리서 포렴을 걷는 모습이 보이기에 가까이 가보니 라멘 가게가 하나 있었다. 망설일 일이 있을까? 들어가서 교자, 라멘, 밥을 시키고 맥주를 한 잔 곁들인다.

 


라멘을 먹으며 갈 곳을 찾아보던 중 찾은 장소는 코토인이다. 전국시대의 무장인 호소카와 다다오키가 세웠다. 가을에는 단풍으로 그 외의 계절에는 대나무 숲으로 유명하다는 말에 관심이 생겨 찾아왔다.

 



입구부터 양쪽으로 높게 뻗은 대나무가 눈에 띈다.

 



일본에 왔을 때 읽으려고 가져온 책을 아직 다 읽지 못했기에 바람도 시원하고 볕도 좋은 이 곳에서 마저 읽고 귀국하기로 마음먹는다. 마실게 하나 쯤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입구를 지키던 학생에게 물어보니 간단한 다과와 차를 판다기에 하나 주문한다.

 




이곳은 일본 다도의 창시자인 센노 리큐와도 많은 관련이 있는 장소인데 서원은 리큐의 저택을 이축한 것이고, 이에 연결된 다실인 쇼코켄도 다과회가 열렸던 다실을 옮겨놓은 것이다. 심지어 이 곳의 건립자인 호소카와 타다오키센노 리큐의 일곱 수제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안에는 센노 리큐와 관련된 장소, 물건들이 많이 남아있다.

 





분명 1월은 아직 겨울 이다만, 따스하게 비치는 햇살 덕분인지 기분 좋게 책을 읽고 일어날 수 있었다. ‘멀리 와서 책만 읽다 가면 아쉽지 않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여행은 자기만족이니까 아무 문제없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남은 차를 마시고 일어나니 머릿속 가장 안쪽까지 상쾌해진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슬슬 출발해야 할 시간이다. 길게만 느껴지던 이 여행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순간이다. 갑자기 미련이 남기 시작하지만, 방법이 없으니 천천히 절을 떠난다.

 


공항까지는 남은 여비도 쓸 겸, 특급인 하루카를 이용하기로 한다. 해질녘에 교토를 떠났는데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이다. 날은 따스해도 해 길이는 짧다.

 


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자, 다시 또 떠날 날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16. ‘다이토쿠지’, ‘에’, ‘코토인’, ‘하루카’, ‘간사이 국제공항’.

 

201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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