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그렇게 신나게 계획보다 조금 더 큰 차를 몰고 함덕서우봉 해변으로 갔다. 본래 계획대로면 반시계 방향으로 제주도를 크게 한 바퀴 돌 생각이었지만, 내일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일정을 크게 바꿔 야외활동을 첫날에 몰기로 했다. 차에서 내리니 비취빛 바다가 앞에 펼쳐진다. 이래저래 환경 문제로 말이 많이 나오는 제주지만, 그래도 인천 앞바다나 보고 사는 나에겐 이 정도면 별천지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발걸음이 절로 해변으로 향한다.

  


가까이에서 보니 물이 정말 맑다. 잔잔히 떠밀려오는 파도를 보고 있는데 옆에 웬 새 한 마리가 눈에 띈다. 계속해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던데, 이상하게 카메라만 들면 잘 하던 낚시도 멈추고 여기만 멀뚱히 보고 있다. 뭔가 잘만 찍으면 다큐멘터리에 나올 법 한 사진이 찍힐 것 같아서 쪼그려 앉은 채 기다려봤지만 기다리는 동안 Y에게 굴욕사진만 찍히고 제대로 건진 사진은 한 장도 없다. 괜히 사냥에 방해만 되는 것 같아 멀뚱히 서있는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고 떠난다.

 


거무튀튀한 바위 사이로 난 계단을 올라가니 바다로 이어진 길이 있다. 끝까지 걸어 가보니 아무것도 없이 넓게 펼쳐진 바다만 보인다. 사실 여긴 대양도 아니고, 저 바다 너머엔 한반도가 있는 좁은 바다인데도 결국 눈에 안보이니 예전에 홋카이도에서 봤던 태평양의 모습이나 이곳이나 진배없다. 뭐 조금만 눈을 옆으로 돌려도 확 깨긴 하지만 말이다.

 


마실 것도 없이 다니다보니 제법 목이 탄다. 저 멀리 편의점이 있긴 했지만 거기까지 가는 것도 일이기에 근처에 있는 ‘Cafe’ Delmoondo’에 가기로 한다. 입구부터 풍겨오는 빵 굽는 냄새와 커피 향의 조화가 제법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페 뒤로 바다가 보이는데 풍경이 정말 멋있다. 아무래도 좀 앉아있다 가야할 것 같다.

  


메뉴에 동백 허니 칵테일이라는 칵테일이 있기에 궁금해서 무알콜로 주문을 해봤다. 무알콜이라 더 그런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훨씬 달아서 아주 마음에 든다. 매실과 꿀로 단맛을 냈다는데, 얘기를 듣고 나서야 그 맛이 느껴지는걸 보니 나도 어디 가서 혀로 내세울 실력은 아닌 것 같다. 그럼 나머지 이 분홍빛은 동백으로 낸 걸까? 앉은 자리에서 Y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벌써 음료를 다 마셨다. Y가 주문한 커피나 뺏어 마셔야지.

 


가게 안팎으로 정성스레 꾸민 흔적이 보여서 좋았는데 안에선 간단한 기념품도 팔고 있었다. 이번엔 급하게 온 여행이라 지갑이 가벼워서 눈으로만 보고 지나가기로 한다. 제주도야 앞으로도 꽤 자주 올 것 같으니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아까 칵테일을 마시며 근처를 둘러보니 저 멀리 산까지 해변이 이어지던데 이제 그곳을 걸어보러 가야겠다.

 


해변 끝까지 천천히 걸어가니 갑자기 등산로가 나온다. 서우봉을 올라가는 길이라는데, 경사는 급해도 그렇게 길어 보이진 않아 올라 가본다. 천천히 Y의 뒤를 따라 올라가는데, 그냥 걷는 것뿐인데 기분이 좋아진다. 생각해보니 함께 여행을 간 것도 작년 겨울의 부산 이후로 처음이니 꽤 오랜만이다.

 


중간쯤 올라가니 있던 정자, 어차피 서우봉을 넘어서 올레길을 걸을 생각은 없었기에 이쯤 올라가기로 한다. 뒤편으로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벤치가 있어서 그쪽으로 가본다. 아까 아래서 본 해변도 아름다웠는데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은 어떨지 기대된다.

 


탁 트인 풍경,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도, 맑은 바닷물, 그리고 아름다운 색. 불어오는 바람마저 기분 좋다. 한 가지 옥의 티라면 조금은 구름이 많다는 것 정도일까? 그래도 비 내리지 않는 게 어딜까 생각해보면 이정도면 감사할 뿐이다. , 해변이 조금만 더 고즈넉했으면 좋았을까?

 


올라왔던 길로 내려가긴 싫었기에 옆으로 보이는 샛길로 들어가 본다. 안내도를 보니 어차피 이 길도 내려가는 길인 것 같아서 걷기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외진 길로 들어간다. 어차피 대낮이기도 했고, 혼자 걷는 길도 아니기에 오히려 이편이 더 재밌다. 조용한 숲 속에서 들리는 소리는 새 소리 뿐, 해변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이렇게 조용해지니 올레길은 어떤 풍경일까 생각해보면 한 번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갑자기 탁 트인 곳이 나와서 보니 저 멀리 해변이 보인다. 내가 여기 있다고 차가 따라올 일은 없으니 별 방법이 없다. 왔던 것처럼, 천천히 걸어간다. 그래도 올 때와는 다른 풍경과 함께하니 지루할 일은 없다.

 


해변에 도착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 갑자기 웬 강아지가 앞으로 지나가더니 눕는다. 마치 제 집처럼 당연하게 누워 자던 녀석. 웃기기도 하고 자는 모습이 귀엽기도 해서 사진을 찍는데 소리가 거슬리는지 귀는 움직이는데 눈은 뜰 생각을 안 한다. 문득 생각해보니 조금만 따스해지면 돗자리 피고 밖에서 자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뭐 쟤는 털도 있으니까 지금이 딱 좋은 시기겠지, 부럽다 부러워.

 


어느덧 해변의 끝, 슬슬 배도 고파지는걸 봐선 점심 먹을 때가 된 모양이다. 함덕서우봉 해변을 떠나기 전에 끼니부터 때우고 가야겠다.

 

#2. ‘함덕서우봉 해변’, ‘카페 델문도’, ‘서우봉’.

 

2016.12.20.


'Travel essay > 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도 여행기 - #4. 성읍  (0) 2017.03.28
제주도 여행기 - #3. 김녕  (0) 2017.03.26
제주도 여행기 - #1. 제주  (0) 2017.03.24
홋카이도 여행기 - #13. 삿포로  (2) 2017.03.24
홋카이도 여행기 - #12. 카미카와  (0) 2017.03.22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방문자수
  • Total :
  • Today :
  • Yesterday :

Over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