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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취와 함께 오전의 반을 날린 뒤, 구마모토 역으로 나왔다. 늦잠을 잤더니 아직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해 속이 영 허전하다.

 


오늘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중 하나인 풀베개, 쿠사마쿠라의 배경인 오아마 온천에 가는 날이다. 버스가 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막간을 이용해 삼각 김밥 두 개를 사다가 역 근처 벤치에서 배를 채운다.

 

 


가는 동안 바다 건너 나가사키 현의 시마바라 시가 보인다. 뒤편의 높은 산은 아마 예전에 나가사키 여행을 갔을 때 봤던 운젠 산이겠지 싶다. 버스 안에는 오아마 온천에 가는 사람들인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풀베개’, ‘온천따위의 얘기를 하는걸 봐서는 비슷한 목적으로 가는 것 같다.



잠깐 졸다가 한 정류장을 더 왔다. 시골이라 그런지, 한 정거장만 더 가도 꽤나 멀리 온 느낌이다. 다행히 표지판에 목적지인 마에다 가 별저가 보인다.

 


조금은 시원해진 줄 알았는데, 볕이 들고 그늘 없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꽤나 더워지기 시작한다. 원래 묵고 싶었지만 혼자서 묵을 수 없다는 이유로 방문에 실패한 나쓰메 소세키가 묵었다는 여관을 지나쳐 마에다 가 별저로 향한다.

 


어째 관광지 치곤 몹시 조용한 입구. 안에도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안에는 사람은커녕, 둘러보러 온 사람도 없었다. 덕분에 안 그래도 조용한 마을에서 가장 조용한 장소로 온 느낌이 들어 여러모로 기분이 좋아진다. 내내 볕을 쬐며 걷다가 그늘에 오니 한층 더 시원하기도 하고, 조금은 기분 나빴던 축축한 등도 말끔히 말라간다. 안에는 욕탕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들어갈 수는 없고 멀리서 내려다 볼 수 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별로 화려할 것도 없다만, 설명을 읽다 보면 그때 기준으로는 꽤나 잘 꾸며진 욕탕이었나 보다. 넓은 욕탕을 보니 괜히 나도 씻고 싶어진다.

 


걸터앉아 바람이라도 쐬고 싶게 만드는 장소다. 출입금지 표지가 없어서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 꽤 고민했지만, 왠지 이건 아닌 것 같아 그냥 지나친다. 지금 생각해보면 잠깐 쉬었다 가는 정도는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별저를 지나 점점 위로 향한다. 생각보다 가파른 길에 그늘에서 말렸던 땀이 다시금 옷을 적신다. 그래도 위까지 올라와 보는 풍경은 꽤나 탁 트여있어서 제법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마을 곳곳엔 귤나무가 잔뜩 심어져 있었는데, 꽤나 탐스럽게 열렸다. 그러고 보니 이 동네도 귤로 제법 유명하다 들었는데, 어째 귤을 한 번도 못 먹어봤다. 구마모토에서도 파는 걸 못 본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제철이 아닌걸까?

 


표지판을 보니 온천이 근처에 있어 다시 등산 중이다. 지도에서 보면 지척인데, 자세히 보니 등고선이 빽빽한 게 어째 쉽게 가지 못할 것 같더라니, 아니나 다를까 돌고 돌아가는 길이다. 조금 덥기도 하고, 옆으로 보이는 풍경이 꽤나 이질적이기에 한 컷 담고 다시 갈 길을 재촉한다.

 



온천은 노천탕이었고, 직전에 봤던 그 탁 트인 풍경을 온천을 하며 볼 수 있게 꾸며놨다. 뭔가 육안으로도 근처의 민가가 보이는 게, 어째 이 정도로 탁 트여도 괜찮은 걸까 싶긴 하지만 덕분에 뜨뜻한 탕 속에서 절경을 봤으니 불평할 건 없겠지. 만원도 안 하는 가격으로 이 정도로 호강을 하게 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짧게 온천욕을 마치고 온몸의 긴장도, 찝찝함도 푼 채 맥주 한 잔과 감자튀김을 먹어본다. 별거 아닌 감자가 왜 이렇게 맛있는지, 역시 음식도 기분따라 맛이 갈리나보다.

 


괜히 식욕이 생겨 가츠동을 하나 시켜 먹고 식당에서 일어난다.



안에서 근처 역과 이어주는 셔틀을 운행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애매해 그냥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 버스를 타기로 한다. 올라오면서 보는 풍경과, 내려가면서 보는 풍경이 다르다는 건 몹시 당연하지만 여행을 하며 놓치기 쉬운 일이다. 올라오면서는 사진으로 담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내려갈 땐 카메라를 잠시 끄고 천천히 둘러보며 내려가 보자.

 

2018.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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