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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바다지기 2018. 8. 8. 22:10 댓글확인



매일 자신이 싫어하는 일 두 가지를 하는 것은 영혼에는 좋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만화인 바텐더에 나온 대사이다. 저 한 구절이 너무 좋아서, 그 출처인 달과 6펜스를 읽게 됐다.

 

달과 6펜스를 읽으며 가장 백미였던 부분은 역시 글의 말미에서 보여주는 스트릭랜드의 마지막 그림일 것이다.

 

어떻게 이 작가는 글로써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삽화 한 장 없는 이 투박하고 얇은 책 속에는 실재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스트릭랜드의 모든 그림이 담겨있다. 그가 문드러진 육신을 이끌며 최후의 그림을 그릴 때에는 그 낡은 화방에서 천천히 붓을 움직이는 병든 화가의 모습마저 머릿속에 그려지며 읽는 이로 하여금 전율하게끔 한다.

 

이런 멋진 그림을 그린 괴짜 스트릭랜드’. 돌연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가족을 버리고 가출을 한 그의 모습부터 묘한 기시감을 느꼈는데 알고 보니 폴 고갱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이었다. 비록 내가 미술사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그의 삶이었기에 기시감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 속에서 인격적으로, 개인사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아야 했던 폴 고갱은 한층 더 세련되고, 아름다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물론 스트릭랜드또한 괴팍하고, 신의가 없으며, 뻔뻔한, 결코 매력적인 성격의 인물은 아니지만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왠지 점점 그에게 매혹되기 시작했다. 혹시나 그 모티브가 된 삶이 매력적이어서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폴 고갱의 발자취를 찾아봤지만, 나는 그에게 스트릭랜드만큼 매혹되지 못했다. 실재와는 다른, 이토록 매력적인 인물을 창조해낸 것이 정말이지 놀라웠다.

 

소설 내내 나는 스트릭랜드의 삶을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본다. 하지만 그 묘한 거리감이 자칫 가까워지면 촌스럽고, 불쾌할 수 있는 그의 삶을 신비롭고, 고고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가정법원의 판사가 아니기에 그의 삶에 대해 가타부타를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다지 도덕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되지 않는 그의 삶에 나는 왜 매혹되는지가 알고 싶다. 그의 마초적인 모습에 끌린 걸까? 아니면 꿈을 위해 모든 걸 버린 그의 모습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책상에 앉아 독후감을 쓰며 고민해봤지만 쉽게 명료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내 도달한 결론은 바로 그의 자유였다. 그는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세상에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 속 그의 모습은 자유 그 자체다. 그는 그가 하고 싶은 일을, 만나고 싶은 사람과, 가고 싶은 장소에서 해낸다. 그 과정에 궁핍함도, 추잡함도 있지만, 그는 결코 꺾이지도 타협하지도 않는다. 그리고는 끝내 걸작을 탄생시키고, 그것을 다시 세상에서 지움으로써 자신의 인생 최후의 걸작에게마저 자유로워진다. 이러한 모습에 나는 그에게 매료된 것이 아닐까?

 

나는 스스로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말자고 자주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과연 실제로 그러했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갈팡질팡하는 나에게 그의 모습은 마치 우상과 같았다. 책장을 덮은 나는 여전히 범인일 뿐이지만, 그러한 삶을 소설 속에서라도 마주한 것은 분명 나에게 멋진 경험으로 남지 않을까.

 

달과 6펜스 (2010).

서머싯 몸 저, 송무 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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