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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걸어 다녀서 그런지 공원에 이제 막 도착했건만 발바닥이 꽤나 아프다. 같은 리큐출신의 공원인 시바 리큐 은사 정원에서 실망을 해서 그런지 입장료를 선뜻 내기가 꺼림칙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안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니 동전지갑을 털어 입장료를 내고 공원 안으로 향한다.

 


꽃도, 나뭇잎도 없는 정원. 이런 건 애초에 큰 기대도 하지 않았다. 풍광은 별 거 없지만 그래도 이 공원 안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챠야가 몇 군데 존재하는데, 잠깐 앉아 따스한 차를 한 잔 마시며 몸을 녹이고 싶다.

 


... 첫 번째 챠야에 도착했지만 아무래도 따스하게 몸을 녹이긴 그른 것 같다. 그리고 왠지 근처에 기념품 가게는 보여도 찻집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가야할 것 같은데, 일단은 다리가 아프니 잠깐 앉았다 가기로 하자.

 



그래도 안내판까지 있는 걸 보니 나카지마노오챠야는 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지도로 봤을 땐 공원이 그리 커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다 보니 길을 헤매서 그런지, 꽤나 넓게 느껴진다.

 


그리고 딱 봐도 영업용이 아닌 전시용인 건물이 보이고, 여기도 꽝인가 싶었을 때.

 


호수 안의 섬으로 가는 다리가 보인다. ‘시바 리큐 공원도 아마 이걸 하고 싶었던 걸까?

 


말차 한 잔과 차와 함께 즐길 다과를 주문한다. 온돌에 익숙한지라 안은 그렇게 따스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밖에서 한참을 걷다가 잠시 바람이 들지 않는 곳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몸의 긴장이 풀린다.

 


밖이 간간히 밝아져서 미닫이문을 열고 밖에 나가보니 구름이 아까보다 많이 옅어졌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구름이 걷힐 것 같기도 하다.

  


차를 한 잔 더 시키고 몸도 녹일 겸, 가져온 책도 마저 다 읽을 겸, 조금 더 눌러 앉기로 한다. 하늘까지 더 맑아진다면 금상첨화다. 비행기에서도 많이 못 읽고, 어제도 하루 종일 바빠서 아직 장수가 많이 남은 줄 알았는데 한 30분 정도 읽고 나니 역자 후기가 나온다. 창밖을 보니 분명 시간은 일몰에 더 가까워졌는데, 책장을 덮고 창밖을 보니 들어올 때보다 한층 더 밝아졌다. 욱신거리던 발바닥도 나아졌으니, 다시 움직여보자.

 


핸드폰으로 지도 어플 하나 켜면 길을 잃어버릴 일이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이런 공원에서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보며 목적지로 직진하는 것도 멋이 없다 싶어 감에 맡긴 채 걷기로 한다. 이미 아까 길도 잃어버렸었는데, 별로 무서울 것도 없다.



아까 표지판에서 스쳐지나가듯 본 수상버스가 저 배인 모양이다. 예전에 아사쿠사 근처의 스미다 강가에서도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는데 노선이 궁금해진다. 다음 도쿄 여행엔 한 번쯤 배를 타보는 것도 제법 즐거운 일일 것 같다.

 


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니 왔던 길을 방향만 바뀐 채 다시 걷고 있다. 또 길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이왕 길도 잃었으니 다 둘러보자 싶어 천천히 걷다 보니 멀리 탁 트인 곳이 보인다. 가까이 가 보니 작은 신사가 하나 나온다.

  


바로 앞에는 유채꽃이 잔뜩 심어져 있었는데, 아직 자리를 제대로 못 잡았는지 꽃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놓았다. 아쉬운 대로 바로 앞에 핀 매화로 만족하자. 분명 찍을 땐 매화가 주제였는데, 어째 콘라드 호텔 광고 사진마냥 찍혔다.

  


이제 슬슬 공원을 나가려는데 옆에 수령 300년의 소나무라는 명판이 보인다. 300년이라... 짧은 기간은 아니다만, 나무치고 오래 살았다고 느껴지진 않는 참 애매한 시간인 것 같다.

 


짐을 찾으러 호텔로 돌아가는 길, 사실 조금 피곤했기에 택시를 탈까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여행인데 한 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유리카모메 선로를 따라 하마마쓰로 향한다.

 


공원 이름이 이탈리아 공원이라서 뭘까 싶어 들러봤다. 공원 둘레를 따라 이탈리아의 유명한 조각 작품들의 복제품들이 전시 중인데, 아무래도 그래서 이탈리아 공원인 모양이다. , 직관적인 명명법이지 싶다.

 


이탈리아 공원바로 앞에 있는, 야마노테센이 지나는 철길 밑으로 난 굴다리를 지나 호텔이 있는 다이몬근처로 향한다.

  


짐을 찾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 하마마쓰쵸 역에 왔다. 처음 도쿄에 도착했을 때 JR 출구로 나왔던지라 당연히 탈 때도 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옆의 빌딩을 통해 올라가야 도쿄 모노레일 역이 나온다. 거리상 다른 역으로 봐도 충분한 역도 환승통로로 이어주는 한국의 대중교통이 살짝 그리워진다.

  



서두른 덕에 조금 일찍 도착한 공항에서 남은 현금으로 기념품을 사고 전망대에 들러본다. 아직까지 공항이 여러 법으로 묶여 사진 한 장 찍기 힘든 우리나라다 보니 이런 시설이 있으면 꼭 들르는 편이다. 이쪽 터미널이 ANA가 쓰는 터미널인지, 주변을 둘러봐도 JAL은 안 보이고 ANA만 한 가득이다.

  


비행기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라운지에서 캄파리를 살짝 올린 맥주와 초콜릿, 비스켓으로 때운다. 하네다의 라운지를 사용해보니 김포의 라운지와 너무 비교가 된다. 경영난 이후로 각종 서비스를 줄이는 아시아나항공이니 라운지도 별 수 없겠다만, 옆 동네 항공사와 이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다시 김포로 떠나는 하늘길.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해 조금 허전했는데, 아무래도 안 먹길 잘한 것 같다.

 


흔히 해당 국가의 비행기나 선박은 그 나라의 영토로 간주한다고 한다. 일단 일본 국적기니까 대한민국 영공을 나는 지금도 일본이라 치자, 그래도 일본 여행기의 마지막 문단인데 일본에서 남기는게 뒷맛이 깔끔하니 말이다. 고작 이틀의 짧은 여행이건만 사진의 수도, 쌓은 추억도 여느 긴 여행 못지않게 가득 담아오는 느낌이다. 내심 하루만 더 있었으면라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보낼 수 있는 이틀이란 시간 속에서 가장 많은걸 해본 이틀이었다. 그래도 다음엔 월요일에 연차라도 내고 다녀와야지. 참 짧고, 굵은 여행이었다.

 

201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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